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오늘은 제66회 스승의 날이다. 그러나 스승의 날만 돌아오면 전국 학교의 70%가 휴교를 하고 선생님들은 씁쓸해 한다. 갈수록 스승의 날에 깃든 아름다운 의미가 점차 퇴색되고 있다. 한 송이 카네이션조차 기쁘게 주고받을 수 없는 게 요즘 현실이다. 왜 이런 사회풍조가 생긴 것일까? 신성해야 할 교단에서 폭언, 수업 방해, 폭행, 성희롱까지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받는 교권침해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자의 길을 잘못 선택한 일부 비리교육자들 때문에 더 질타를 받는다. ‘교육자적인 양심이 부족하다’느니, ‘교육자적양심이 사라져 가고 있다느니’ 하며 교단을 경시한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쓰려온다. 도대체 교육자적 양심이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 양심은 사물의 선악을 구별하여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바른 행동을 하려는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엔 비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위선으로 권력을 남용하는 정치인, 금권을 앞세워 갑질을 밥먹듯 하는 기업인, 신을 빙자해 신도들 간을 빼먹는 종교인, 사기꾼, 폭력배  등등,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손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람들이 가끔씩 비양심적인 충동을 느끼는 건 비양심적인 사람들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당장 눈앞의 이익과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고 양심을 저버리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가끔씩 양심에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되면 양심은 점점 무뎌지게 된다.
양심이 무뎌지게 되면 나중엔 양심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여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뻔뻔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비양심적인 사람이 많아지면 이 사회는 혼란스럽고 세상은 비리로 얼룩져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당장은 양심을 지키며 사는 게 손해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나 자신부터 양심을 지키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고 밝은 사회건설에 일조하는 길일 것이다. 그럼 교육자적 양심이란 무엇인가? 무릇 교직자는 학교 교육의 주체다. 옛말에 ‘훈장의 똥은 개도 먹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교직자의 길은 어렵고 외롭고 의로운 것이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 일인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시급히 교육자적 양심을 찾아야 할 때다. 그것은 바로 투철한 교육자적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갖고 미래의 일꾼을 양성하는 데 전념하는 일이다. 교육의 정의에 대하여 많은 동서고금의 교육학자들이 말한 공통분모를 추출해 본다면 교육이란 성숙한 사람이 미성숙한 사람에게 무엇인가 가치로운 것을 가르쳐주고, 미성숙한 사람은 성숙한 사람으로부터 그것을 전수 받는 상호작용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극단적 집단 이기주의에 휩싸여 교단이 불신 받고, 교육 붕괴를 운운하는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교육자들의 사기가 꺾이게 된다. 하지만 교육자의 힘은 순교자의 피 보다도 값지고, 의미있을수 있다는 교육적 진리를 믿으며 절대다수의 교육자들은 현실의 어려운 교육풍토를 몸으로 부딪쳐 소화하며, 묵묵히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왜 그러면 사회는 교육자에게만 그토록 특별히 양심을 아니 교육자적양심을 기대하며 강요하는 것일까? 사도헌장(師道憲章)에 ‘오늘의 교육은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발전과 내일의 국운을 좌우한다.’라는 문구와 사도강령(師道綱領)에 ‘민주 국가의 주인은국민이므로 나라의 주인답게 제자들을 길러내는 교육은 가장 중대한 국가적 과업이다.’라는 문구가 그 질문을 대변한다고 볼수있다. 그러기 위하여 교육자는 국가 발전과 민족 중흥의 선도자로서의 사명과 긍지를지니고 교육을 통하여 국민 각자의능력을 최대한으로 계발하여 개인의 자아실현과 국력의 신장, 그리고 민족의 번영에 열정을 다하여야 한다.
또한 교육자의 품성과 언행이 학생의 성장 발달을 좌우할뿐아니라 국민 윤리 재건의 관건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사랑과 봉사, 정직과 성실, 청렴과 품위, 준법과 질서에 바탕을 둔 사도확립에 스스로 헌신하여야 한다. 교사의 십계명에 나와 있듯이 봉사를 머뭇거리지말자. 교사의 삶에 있어서 가장 가치로운 것은 학생을 위해 사는 것이다. 무명교사 예찬사의 한 구절처럼 ‘유명한 교육자는 새로운 교육학의 체계를 세우나, 젊은이를 건져서 이끄는 자는 무명의 교사로다. 그가 켜는 수많은 촛불, 그 빛은 후일에 그에게 되돌아와 그를 기쁘게 하노니, 이것이야말로 그가 받는 보상이로다.’ 오늘 이시간에도 교육의 열정에 등불을 밝히시는 수많은 교육자 여러분들에게 마음의 카네이션꽃다발을 드립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