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묘순 문학평론가

김묘순 문학평론가

1988년 3월, 오랜 세월동안 '월북설‘에 휘말려 공허한 세월을 보냈던 정지용에 대한 해금이 이루어졌다. 조국의 분단과 이데올로기라는 거대담론에 갇혀 매장되었던 정지용. 그의 해금에 고향사람들도 일조했다는 증언이 구술되었다.

따라서 필자는 영원히 매몰될 위기의 한국현대문학사 복원 과정에 정지용 고향인 충청도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지용 전기적 작가론의 일부에도 고향사람들의 이야기를 일부 기록해야 하겠기에 이 부분에 주목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월북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정지용 해금과 관련, 중앙 중심의 학계, 문학계, 가족 등의 노력만 부각된 게 사실이다. 그들의 중요성과 기여도 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서는 거론하지 않고 정지용 고향사람에게만 집중하려고 한다.

해마다 열리는 ‘지용제’ 축사에서 자신도 “지용 해금에 일조”했다고 짧게 전하는 김영만 옥천군수에게 자세한 증언 구술을 어렵사리 부탁했다.

자신을 “스쳐가는 심부름꾼”이라며 겸손해 하는 김 군수는 1980년대 대통령 단임제, 민주화 운동, 사면복권, 광주민주화운동의 올바른 정립을 주장하며 정계 진출을 모색했다. 이후 1984년 박준병 의원을 만난 게 인연이 돼 1985년 국가정책조정위원장인 박 의원의 보좌관으로 발탁된다. 당시 이화여대를 졸업한 김해영(김승룡 옥천문화원장 누나) 비서관과 같이 근무하게 됐다.

국책조정위원회가 시작되기 전 이들은 사무실에서 의원자료 정리, 문서분류, 보고서류 작성 등으로 분주했다. 이때 ‘정지용 해금’ 관련 서류와 마주한다. 정지용의 고향 사람들이 국회 사무실에서 마주한 정지용 관련 서류는 ‘○, △, ×’ 등의 기호화된 일련의 처리 과정도 있었다. 정지용은 ‘△’로 분류됐다. ‘△’는 해금이냐, 미해금이냐의 기로에 서 있음을 말해 주는게 아닌가. 다시말해 ‘○’가 되면 해금이고, '×'로 떨어지면 미해금 즉, 지용은 죽었어도 그의 작품은 사장돼 영원히 볼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김 군수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지용은 사상과는 거리가 있는 순수 시인이고 월북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 일상이라는 질곡에 구속된 상황에서 행방불명되었다. 다만 해방 이후 시론에서 시대적, 사회적 상황을 바탕으로 사회의식과 시대비판 정신이 드러나는 중수필적 요소를 비교적 잘 갖춘 내면적 자아의 혼란스러움을 그려놓고는 있었다. 순박하고 소박한 세계관의 소유자이기도한 정지용은 좌우익의 이데올로기가 확실히 정립되지 못한 시대의 혼란스러움을 시론으로 표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이는 솔직한 도덕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가 ‘○’로 격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지용의 해금은 조금 이른 시기에 이뤄졌고 그의 작품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심부름꾼’을 자처한 김 군수에게 여러 조력자도 있었다. 해금은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갈등해결의 실마리를 제공받게 된다. 동양일보 조철호 회장, 전 옥천문화원 박효근 원장, 안철호 회장, 고 양무웅 약사 등 정지용 고향 사람들이 지용의 한국문학사적 위치, 문단의 중요성 그리고 그 역사적 의의 등에 대하여 쉼없이 조언했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은 지금의 블랙리스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을 것이며 해금을 거론하기는 더더욱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월북설이 나돌아 국어교과서에서마저 시가 모두 삭제되는 불운의 정지용이 아니었던가. 정치 상황이나 사회 분위기가 월북설이 나돌던 한 사람의 작가를 기존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것, 그것은 지용이나 지용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변의 위협과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보다도 더 혹독하고 가혹한 벌이다.

필자는 정지용 해금과 관련된 원고를 쓸 때마다 당시 애써주신 여러분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숙연해진다.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정지용 연구에 매진해야겠다는 한 보따리의 사념(思念)이 불면증을 몰고 온다. 정지용이 해금된 지 30년을 지났고, 31회 지용제가 그의 고향 옥천에서 지난 13일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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