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 희 팔 논설위원 / 소설가

 안마기를 하나 샀다. 안마하는 것뿐이 아니다. 등허리 긁는 것도 달려 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어깻죽지 두드리는 것(발이 좀 두터운 것)과 등허리와 팔다리며 좀 신체의 약한 부분을 두드리는 것(발이 좀 가는 것)하며, 등이 가려울 때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것(오그린 손가락 모양의 것) 등이 하나에 다 달려있는 것이다. 가게주인은 이걸 하나 팔려고 더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지만 그러하지 않아도 보기에 쓸모가 있을 것 같아 주저하지 않고 집어든 것이다.

“왜, 마누라 선물로 샀는가?” “뻔하지 뭐 감춰 논 작은댁 없응께 그렇잖겄어!” “자기도 쓰고 할망구도 쓰고 각각 쓰려는 거겠지 뭐.” “서로 두드려주고 긁어주면 되지 뭐하게 돈 주고 사는겨?” 옆의 할배들이 한 마디씩 한다. “이것 사가지고 가야 좋은 소리나 들을는지 몰러. 내가 뭐 하나 하면 무조건 반대니께. 먼저 번에도 할망구 원피슨가 완피슨가 하나 사줬다가 지청구만 잔뜩 먹었잖여. ‘누가 이런 것 사오라구 했냐? 이런 건 새파란 젊은 애들이나 입는 거지 다 늙은 쭈구럭밤송이한테 어디 해당하는 거냐. 눈으로 보면 모르느냐 울긋불긋 호화찬란한 걸 누구보구 입으라느냐!’ 면서 갖은 잔소리 끓여 부치곤 휙 동댕이치는 걸 그래두 아까워서 주워다가 농속에 휙 쳐박아두었었잖여.” “그래두 자네 마누라가 요전에 한창 입고 다니면서 먼지 탁탁 털어내던 것 아녀?” “왜 아녀, 괜히 사람 속 터지게 무조건 타박부터 한다구. 이 안마기 보구두, ‘이게 다 뭐 말라비틀어진 거냐구, 돈이 흔해빠졌지 이런 것 없어두 여태껏 살았다구, 당신이나 쓰면서 어깻죽지가 결리느니 등이 가렵다느니 사람 귀찮게나 하지 말라’ 면서 나한테 휙 밀어붙이지나 않을는지 모르지.” “참 딱도 하이. 자네 워낙 부드러운 맛이 없고 딱딱한 ‘딱장대’ 같은 사람 아닌가. 그것부터 고치게. 그럼 자네 마누라도 달라질 게야.” “그래, 내 할 나름여. 내가 부드럽게 하면 상대도 사근사근해지는겨 이 사람아.”

오늘 어버이날을 맞아 면새마을 회에서 면내 노인들을 위해 효도관광을 가는 날이다. 대형버스를 한 13대쯤 대절해 간다니 여간 큰 행사가 아니다. 각 버스에 새마을 청년회와 새마을 부녀회에서 각각 한 명씩 그리고 각 동리이장 해서 3명이 인솔자로 배치돼 노인들을 하루 종일 돌본다니 벌써부터 동리노인들의 마음이 들떠있다. “여봐 할망구, 어여 준비히지 못햐!” “제발덕신 그 할망구소리 좀 빼슈. 말끝마두 할망구, 할망구!” “그럼 할멈, 할멈 할까. 팍 찌그러져 가지구 그래두 새 새댁대우는 받고 싶은가베.” “당신한테 영감탱이, 영감탱이 햐면 좋겠수? 같은 말이래두 여보, 당신 하면 어디가 덧나나 원, 그러나저러나 나 오늘 그런 소리 듣구 거기 갈 맘 없수 당신 혼자 가든지 말든지 맘대루 해유!” “저저저 말뽄새 보게 기껏 난 그래두 할망구 위해서 같이 가려구 했드니만 에잇!”

실은 할매는 관절염 통증을 치료하는 날이라 병원에 가야하겠어서 관광은 가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영감의 말투에 그만 부아가 나 말 나오는 대로 해 부친 것이다. 관광에 못 간다는 말을 전해들은 또래 할머니들 두엇이 이 할매 집으로 들이닥쳤다. “무슨 소리여 안 간다니, 다 내우 내우 가는데 거기만 빠진다니 되는겨, 어여 일어나 가자구!” “싫여 나 오늘 안가!” “젊은 사람들이 자리를 마련했는디 그 사람들 할 일 없어서 그러는 거 아녀 빨리 옷 갈아입어 가자구.” “싫여, 영감쟁이 딱딱거리는 말투에 기분이 확 상해버렸어 거기들이나 어여 가봐 늦겠어.” 맘에도 없는 말을 내뱉는다. “어이구 승질머리냐구, 영감이 딱딱거리는 딱장대라 하지만 거기는 성질머리 사납구 고집 센 딱장대라구. 어느 한 쪽이 부드러워야 할 텐디 둘이 똑 같으니 원, 자네부터 그러는 걸 고쳐야 해 그러면 자네 영감두 달라질 게야.”

이래서 딱장대영감 혼자 효도관광에 가게 된 것이다. 딱장대영감이 마누라를 위해 안마기를 샀다는 말을 듣고 동네 할머니들이 관광에서 돌아와 딱장대할머니한테 달려왔다. “여게, 자네를 위해 자네 영감이 등 긁는 게 달린 안마기를 샀으니 딱딱하게 대하지 말고 부드럽게 대하게. 오고가는 말이 고와야지.”

집에 돌아온 영감이, “당신 위해 이 안마기 샀어, 나하고 같이 씁시다.” 하고 쑥스럽게 쑥 내밀자, “아이구 영감 고맙수. 이러니저러니 해두 내 영감밖에 없지! 그래 구경은 잘 했수” “다 짝이 있는데 나만 혼자라 임자 생각 많이 났지.” “다음번엔 같이 갑시다. 영감 어깨 무겁지요 이걸로 두드려 볼게요.” 둘이 번갈아 등허리도 서로 긁어준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