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영 논설위원 / 유원대 교수

백 기 영 논설위원 / 유원대 교수

(동양일보) 1파운드 주책정책을 들어보았는가? 단돈 1파운드로 슬럼화된 빈집을 살 수 있게 하는 정책이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도시재생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으며, 그 중에는 대표적인 곳이 영국의 리버풀이다.

오랜 경제 불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자 주택은 장기간 빈집으로 방치되었다. 빈집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영국 정부는 2002년부터 리버풀을 비롯한 9개 도시를 대상으로 주택시장개선정책을 시행한다. 지자체가 빈집을 사들여 철거하고 새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오래된 흑인거주지역으로 가장 쇠퇴한 지역의 하나였던, 리버풀의 그란비 포 스트리트 재생사업지구가 그 하나였다. 1990년대 슬럼철거에 따라 마을에 공터를 남긴 채 지역의 문제가 악화되었다.

2011년 정부의 주택시장 재생정책의 방식이 철거방식에서 개량위주로 변경되면서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시작된다. 당시 리버풀은 1천여 채의 빈집을 소유했지만 주택자금이 없어 방치된 상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2013년 시는 이른바 1파운드 주택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시 소유 빈집을 인수자가 보수 비용부담을 조건으로 팔겠다는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 3∼5년 안에 집을 거주 가능한 상태로 재건해야 하고, 최소 거주기간이 있으며, 사는 사람이 2명이상 이어야 하고, 재판매는 5년 뒤에 가능하다. 결국 시가 별도의 예산 지출없이 저소득 무주택 가구의 주택 소유를 지원하는 동시에 해당 주거 지역의 가치를 높이자는 것이다.

몇 가지 문제도 있었다. 방치된 노후주택이므로 보수비용의 문제이다. 어떤 경우 1파운드에 주택을 인수했으나 보수비용으로 총 6만 파운드, 우리 돈 약 8700만원이 소요되기도 했다. 그래도 주택의 시세가치보다는 저렴했다. 신청자가 많았으므로 인수자 선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도 문제였다. 신청자격 기준은 리버풀 주민이거나 직장이 리버풀에 있어야 하고, 전업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생애 첫 주택이어야 한다. 나중에 신청이 폭주하자 선정기준이 추가되었는데, 보수비용을 감당할 수 있도록 연소득 2만~3만 파운드의 저축을 가진 가구를 우선 선정하기도 했다. 그래서 적지 않은 보수비용이 필요해 저소득층은 접근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슬럼지역에서의 안전과 소유관계에 따른 법률적 애로도 있었다. 시 당국이 보수공사를 승인을 해야 주택 소유권이 공식적으로 인수자에게 양도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택은 다시 시 소유가 되고 인수자는 보수비용을 환불받지 못한다. 1파운드 주택정책의 또 다른 문제는 부동산 투기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인수한 뒤 되팔아 큰 시세 차익을 볼 수 있다. 시는 투기 방지를 위해 대상 주택의 양도와 임대를 5년간 금지하지만, 이 조항이 엄격하지 않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은 높았다. 2013년 20채의 빈집을 대상으로 한 시범사업에 250명이 몰렸으며, 2015년 120채를 대상으로 한 두 번째 프로그램에서는 2500가구가 신청했다.

리버풀의 1파운드 주택 프로그램이 충분한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사회기반시설 적정 공급, 일자리와 고용정책의 동시적 추구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자 하는 커뮤니티 정책이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실제로 리버풀 그란비지구에서는 주민중심의 그린지구 만들기, 다문화지역 활성화, 사회적 안전과 화목, 예술과 사회적 구심점 만들기 운동이 전개되었다.

리버풀의 1파운드 주택정책 프로그램의 성공은 유럽 여러 국가에서 정책 도입에 관심을 보이는 등 도시재생과 주택정책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실제로 처음 이 프로젝트가 발표되고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자, 부동산 사업자들이 주변 빈집을 인수해 보수 공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누구도 슬럼지역에 투자하려 하지 않던 상황을 감안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리버풀의 1파운드 주택정책의 성공을 계기로 공동주택이나, 상가재생 차원에서 1파운드 상점으로 확대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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