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UPDATED. 2018-09-22 22:05 (토)
풍향계 / 진심의 난처함에 대하여
풍향계 / 진심의 난처함에 대하여
  • 김주희
  • 승인 2018.05.22 21: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주희 논설위원/침례신학대 교수
김주희 논설위원/침례신학대 교수

(동양일보) 친구의 얼굴을 한 적군, 기껏 찾아낸 적은 우리의 이웃인건지, 기껏 만난 우리의 이웃이 적군 같은 건지 잘 모르겠을 때의 난감함. 세상 착하다가도 순식간에 더없이 냉혹한 비판자로 돌변하는 이를 대하면 어렵다. 예측 가능한 일관성이 없으므로 어떻게 관계를 설정해야 할지 알 수 없으니 엉뚱하게 상처를 주거나 받게 되는 일은 스토리의 뻔한 전개방식이 된다. 예의를 지키면서 정중하게 모면하는 스킬은 쉽사리 익혀지지 않아 진땀나는 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얼마 전 한 집단에 힘을 합쳐보자는 권유를 받고, 필요하다니 머릿수라도 보태주면 좋겠다고 여겼다. 사람들 사이에 자주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먼저 일하던 사람들 사이 불화를 듣고 괜한 일을 시작했나도 싶어졌다. 전에 한 번 본 이에게 길에서 붙들렸다. 호의로 말을 걸어와 인사를 했는데 양 쪽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아는 듯이 시작했다. 얼굴만 아는 이들의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해 욕설의 무더기가 떠밀려오면서는 뜨악했다. 말의 내용이 아니라 근저의 의도를 속으로 묻게 되었다. 훤한 대낮에 일방적으로 욕설을 듣는 모양새이니 사정 모르는 누가 보면 꾸지람을 고스란히 듣는 정황인데 입술에 허연 더께를 얹으면서 전심으로 평가를 쏟아내는 걸 저지하기가 안됐다. 곤혹스럽게도 말은 공전되고 섞을 말이 없으니 또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가 내게 개인지 늑대인지 알 수 없어져가기 시작했다. 그의 말들이 나를 물고 있는 건지 내게 길들 말들인지 혼란스러웠다. 한침을 듣다가 욕을 안하고 목소리를 좀 낮추면 안되겠냐고 물었더니 화를 내며 가버렸다. 누구라도 이렇게 욕먹을 수 있으니 똑바로 하라는 의미였을까. 횡액, 임기 시작도 전에 멀미부터 일어났지만 그렇기로 정식으로 시작도 하기 전에 도망부터 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내내 진심으로 보였다. 몸이 아프다면서 그처럼 열정적으로 긴 시간을 그 주제를 가지고 자기 판단을 펼치는 건 진심과 정성 없이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어쩐 욕설과 분노를? 진심이면 족할까. 사실에 바탕을 두지 못했다면, 사실이지만 해석을 무리하게 하는 것이라면, 객관성을 얻을 수 없다면 그렇다면. 자기 진심이란 자주 다른 이의 사정이나 사실보다 절실할 수 있고, 그럴 때 착시와 왜곡은 저절로 뒤따르기도 할 것이니. 하면 진심이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의 문제인 욕망의 드러냄일지. 원하는 것, 원치 않는 것을 바탕으로 삼아 보자면 사실이 보이는 게 아니라 원하는 사실만 수집하기도 하므로.

정말 좋은 친구는 하기 어렵더라도 옳은 소리를 해주는 사이라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들어왔는데 살면서보니 하기 힘든 말은 듣기도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양약은 입에 쓰다지만 당의정을 만들어 쓰지 않게 약을 먹이는 방법은 이미 개발되어 있지 않은가. 문학이 그렇듯이, 쓰지만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명제가 아니라 시나 소설같은 달달한 형식에 넣어 전달하듯. 모든 사람은 무슨 실수인가를 할 수밖에 없는데 그 안쓰러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안온한 말들이 필요하다 싶은 것이다. 편을 들어주고 격려해 주는 말, 잘못은 만회할 수 있으니 인정할 용기를 내도 좋다는 말, 아직 잘할 기회가 있다고, 그럴 힘도 있다고, 잘 한 것도 있다고 전해주는 용기의 말. 무언가 잘 안되어 실망하고 있을 때 너도 그러냐고, 나도 그렇다고 기꺼이 자신을 낮추면서까지 편들어 주는 그런 마음의 말이 우리를 진짜 실망의 처지에서 벗어나게도 하려니.

우리는 우리의 어린 것들에게 자주 진심을 들이밀고는 한다. 진심이면 족한지 점검해 보아야 할까. 구하지도 않는데 충고를 들이미는 일, 성공한 경험을 들이대는 일이야말로 염려라는 진심의 횡포를 안기는 것일지. 실패없는 길을 안내하고 싶은 자비야말로 돕고 싶다는 앞선 세대의 착한 마음일 수 있지만 실수 없기를 바란다고 실수 않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아픈 사실을 없앨 수 있는 게 아니고 보면. 실수를 기다려 주지 못하는 것, 염려가 비판으로 나타나는 조급함이 버려지지 않고 나날이 커지는 것, 그래서 말이 순해지지 않고 사나워진다면 문제이다. 잘되기를 바라는 진심같은 것들을 순한 말에 담아내야 하리라는 그런 다짐을 다져야 할지. 진심이면 다 되는 게 아니라 그 진심이 자기의 욕망, 조급함이나 자부심의 표출이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는 그 사실, 실수 할 수 있으니 진심이라도 담아야 하는 당위야 말할 것도 없지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충청대로 103 (율량동)
  • 대표전화 : 043)218-7117
  • 팩스 : 043)218-7447,7557
  • 창간 : 1991-12-29
  • 제보전화 : 043)218-722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원중
  • 명칭 : 동양일보
  • 제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 등록번호 : 충북 가 00003
  • 등록일 : 1991-12-27
  • 발행일 : 1991-12-27
  • 회장 : 조철호
  • 발행/인쇄인 : 유영선
  • 편집인 겸 편집국장 : 김영이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ynews@dy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