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 명예교수

박 종 호 논설위원 / 청주대 명예교수

(동양일보) 5월은 더 없이 아름다운 달이다. 녹음의 퍼레이드(행렬)가 펼쳐진다. 대자연이 장관을 이룬다. 그 풍광을 벗하러 길을 나선다. 거리도, 산도, 들도 온통 초록빛이다. 하늘도, 태양도, 바람도, 물도 모두 녹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차창을 스치는 자연은 한편의 수채화이고 서정시이며 서사시로 재창작된다. 고장마다는 ‘전설의 고향’, ‘꿈꾸는 마을’이 되고 병풍처럼 펼쳐지는 산들은 천만년의 침묵 속에서 오늘도 쉼 없이 나무들만의 이야기로 ‘세월’이라는 책을 만든다. 끊임없이 흐르는 하천의 물결은 태양의 빛을 받아 아지랑이와 함께 은빛의 춤을 추는 페스티벌(축제)을 전개 한다.

온 세상이 저토록 짙은 초록으로 물들 수 있고 도처유녹산(到處有祿山)일 수 있다는 것은 신의 섭리이고 하늘의 조화이다. 참으로 찬란하고 신비롭다. 이 좋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하다. 그러면서 가슴이 아프다. 15세 소녀가 봄맞이할 때처럼 심장이 뛴다. 황혼기의 사람들이 해가 넘어가는 언덕에 서서 남은 날이 얼마나 될지를 헤아리며 서러워하는 것처럼 가슴이 아리다.

길이란 무엇인가. 세상에는 수많은 길이 있게 마련인데 그 길들은 어떤 길들이며 어떤 길들이어야 하는가.

인간은 길 위의 존재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길을 만들고 그 길을 오간다. 길은 미래가 그러하듯이 원래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길은 인간들이 끊임없이 왕래함으로써 형체를 갖추게 되고 인간 이동의 통로가 된다. 문제 해결적, 심리 안정적, 목표 달성적 등의 비물리적인 길들은 지식과 지혜 등을 통하여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대안을 길로 삼는다. 이렇듯 길은 ‘발견(finding)’이 아니라 ‘발명(invention)’의 대상인 것이다. 길은 만들려는 주체에 따라 세모꼴이 될 수도 있고 네모꼴이 될 수도 있으며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과 그리움의, 희망과 약동의 길이 될 수도 있고, 원망과 미움, 분노와 좌절의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길은 잘 만들어지고 성실히 관리되어야 한다. 인간이 수목을 헤치며 오르고 내리는 산길도, 일상에서의 왕래와 같은 교류의 길도, 물류 이동의 수단으로서의 물리적인 길도 인간과 사회 등이 나아가야할 방향과 행동 등에 관한 길도 제대로 구축되고 늘 새것처럼 작동될 수 있도록 관리되어야 한다. 만들 때의 목적과 기능에 맞게 사용되도록 관리하여야 한다. 만들어 놓은 채 사용하지도 않고 방치하면 그 길은 잡초로 뒤덮인 채 길로서의 가치가 소멸된다. 길이 없어지는 것이다. 인생도, 사랑도, 우정 등도 모두 물리적인 길과 같다. 산길처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잡초만 자라고 길은 없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의 육체와 정신도, 가족애와 우정도, 사랑과 사회관계 등도 산길과 같이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쉼 없이 다듬고(왕래하고) 가꿔야(잡초 제거) 한다. 인간관계와 사회운영, 선과 관용, 정직과 정의, 도덕과 규범, 양심과 인격 등도 늘 갈고 닦아 빛을 잃지 않게 하여야 한다. 인성의 뿌리인 선, 사랑이라는 양식을 섭취할 수 있을 때 존엄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인격, 가정과 사회를 비롯, 지구촌의 모든 인류가 진실, 정의, 인본 등의 삶이 영위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잡초가 자라지 않게 하여야 한다. 부식되거나 병들지 않게 하여야 한다. 성선의 인격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공동체의식과 인본 정신에서 나오는 사랑 등으로 출렁거리게 하여야 한다. 이렇게 사는 삶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하늘의 이치와 뜻에 맞게 사는 삶인 것이다. 하늘이 주신 생명의 신비와 의미 등에 맞게 사는 삶인 것이다.

창 및 차창 밖으로 5월의 시가지와 산야 등이 자연의 전시장 및 박람회가 된다. 하늘도 땅도 초록으로 장식되었다. 그것도 진초록이다. 그립고 가까이 하고 싶은 색깔이다. 하늘의 실체 및 속살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하늘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그 풍경들을 보면서 하늘의 뜻에 맞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의 길, 인간다운 삶의 길 등을 생각해 본다. 생명을 존중하고 선하며 정의롭고 인격을 갖추었으며 사랑과 존엄 등의 정신과 자세를 가진 사람들로 살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인가. 어떤 길이어야 하는가. 다 같이 하늘의 뜻에 맞을 길을 만들어야 한다. 길고 넓게 만들어야 한다. 녹음의 길, 깨달음과 기도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잡초가 기생할 수 없게 관리하여야 한다. 5월을 통해 하늘이 인간들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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