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동양일보) 지난 주말 특별한 기차여행을 다녀왔다. 청주 역에서 전곡 역까지 720명의 대가족이 같은 열차를 나눠 타고 추억 속을 달렸다. 최종 행선지는 연천 전곡리 구석기시대 유적지다.

성당에서 ‘본당의 날’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기획한 ‘행복한 기차여행’이다.

10세 이하 어린이부터 80세 이상 어르신까지 3~4대가 함께 어울려 깃발을 따라 시끌벅적 움직이는 대 부족(?)의 행렬을 보면서, 이 작은 시골마을에 한꺼번에 이처럼 많은 인원이 몰려온 것은 선사시대 이래 처음이라고 누군가 우스개를 한다.

역사는 우연의 산물일까, 필연의 결과일까. 촘촘한 시간 속을 걸어가서 역사 속 유물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경이롭다. 이번 전곡리 선사시대 ‘주먹도끼(hand axe)’와의 만남도 그랬다. 길이 23.6cm의 돌멩이에 불과한 일명 ‘전곡 주먹도끼’가 몇 십만 년이란 시간의 퇴적층을 뚫고 동아시아 구석기 고고학의 판을 새로 짜게 되는 기념비적 발견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연천 전곡리 유적은 1978년 미군병사 그렉 보웬(Greg L. Bowen)에 의해 발견됐다.

그렉 보웬이 한탄강 유원지를 거닐다 우연히 석기로 보이는 유물들을 발견하게 되고, 이 소식을 프랑스의 보르드(Francois Bordes) 교수에게 알리게 된다.

보르드 교수는 보웬에게 서울대학교 고고학자 김원룡 교수를 소개했고, 1979년부터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시작됐다. 그 해 10월 2일 국가 사적 제268호로 지정된 이래 30여 년에 걸쳐 17차례의 조사가 이뤄졌고 현재까지 약 8,500여점의 구석기 시대 유물들이 발견됐다.

한탄강변의 돌멩이가 구석기시대의 아슐리안 문화의 대표적인 유물 ‘주먹도끼’로 환생하게 된 경위다. 미군병사 그렉 보웬이 고고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필연 같은 ‘우연(偶然)’이 작용을 한 셈이다.

‘문화’가 ‘경작하다-culture’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듯이, 인간이 자연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온 모든 활동과 상호작용의 총합을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역사(history)'는 “알다, 보다”란 본래 의미처럼 인류의 문화 활동이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만들어낸 의미 있는 ’시간의 궤적‘이라 할 수 있다.

마침 지난 주일이 기독교 신앙과 교리의 중심인 ‘삼위일체’를 기리는 대축일이었다.

모든 시간의 시작이며 창조주인 성부와 2000년 전 신인(神人)으로 역사 속에 등장한 성자 예수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하여 말씀의 현존을 이어주는 성령(聖靈)을 하나의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신비이며 신앙이다.

역사를 대하는 태도도 객관적 사실로서만이 아닌 문화적 이해와 주관적 깨달음이 바탕이 돼야 역사적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전곡 유적지가 오랜 잠에서 깨어나, 구석기 문화가 서양의 ‘주먹도끼 문화권’과 동아시아의 ‘찍개문화권’으로만 존재한다고 규정했던 모비우스(Hallam L. Movius, Jr)의 학술적 오만을 뒤집은 것도 그렉 보웬의 우연한 발걸음만이 아니고 역사가 지니고 있는 진실의 힘에 의한 것인지도 모른다.

전곡리 유적지에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시점을 약 30만 년 전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지금 30만 년 전 직립보행을 하던, 한탄강변에서 돌멩이를 깨뜨려 ‘자르고, 찍고, 파고’ 긁으며 생활하던 ‘주먹도끼’의 주인공, 호모 사피엔스와 불과 2000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후예들이 시간의 길 위에서 함께 만나고 있는 것이다.

주먹도끼가 들려주는 교훈은 어떤 것을 확인하고 따져보는 것보다 무엇을 어떻게 받아드릴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선사박물관에서 본 ‘주먹도끼’의 기억은 일상 속에 묻혀가겠지만 유적지를 밟았던 순간만큼은 역사 속 진실로 기록될 것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