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숙 충북도홍보마케팀장

조미숙 <충북도홍보마케팀장>

(동양일보) “여보세요. 조미숙 님이시죠? 냉동해 둔 고객님의 수정체가 1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폐기하거나 보관 기간을 연장해서 활용할 지 선택해야 되는데 고객님 동의가 필요해서요.”

남편의 수화기 너머로 다니던 병원의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냥 폐기하는 게 나을 듯 하네요”하는 남편의 답에 나도 모르게 남편의 전화기를 빼앗고는 “더 시도해 볼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다. 희망을 갖는 간절한 물음에도 불구하고 수정체를 해동하는 과정에서 40~50% 기능이 저하되어 확률 상 어렵다는 간호사의 사무적인 말투의 답이 되돌아 왔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볼게요.”

그렇게 몇 년 동안 7번의 시험관 시도를 실패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세상에 기적이라는 것이 이를 두고 한 말인가? 포기 했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사랑스런 아들을 그때 만나게 됐다.

1995년 결혼 후 몇 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하여 여러 병원을 다니며 검사하고 난관시술까지 했지만, 난관유착이라는 불임 판정을 받고 좌절해야만했다.

난임을 겪으면 누구나 해보는 것이지만, 강원도로 서울로 전국을 다니며 한약, 봉침, 이침 등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았다. 하지만 어느 것도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 희망은 시험관 아기시술 뿐이었다. 성공확률이 높은 병원은 대부분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면서 시술을 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용은 물론 시간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버티기 힘든 과정이었다.

이때 알게 된 병원이 대전의 한 불임 크리닉이었다. 보은에서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거리에 병원이 있어서 그나마 직장(당시 보은군청)을 다니면서 계속 시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시험관아기 시술에 몇 번 성공을 하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유산으로 인해 결핵과 신부전증과 같은 병을 얻어 고생을 하기도 해야 했다.

요즘 환경문제나 생활환경 변화로 난임 부부가 점점 늘고 있다. 주위에 난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띈다. 맘 같아서는 붙잡고 적극 권하고 싶다. 성공할 때까지 어떤 방법이든지 시도해보라고. 포기하지 않으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그때 포기했다면 만나지 못했을 지금은 중 2가 된 아들을 생각하면 다시 한 번 그때의 선택에 감사한다.

지금도 나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지갑에 넣어둔 불임크리닉 진찰권을 꺼내보곤 한다. 진찰권은 20여년을 지갑속의 한켠에서 나에게 위로와 힘을 주며 어렵고 힘든 시기를 지켜주는 부적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요즘 TV의 피로회복제 음료광고 중 목욕탕에서 장난하는 아이들을 돌보며 지친 엄마의 “엄마라는 경력은 왜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걸까?”라는 멘트가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왠지 그동안의 힘든 삶에 대한 위안을 받는 느낌이 들곤 한다.

여자들이 행복하게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고,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아 그 사랑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인구절벽, 청소년 문제, 가족해체와 같은 걱정거리는 자연히 해소되지 않을까? 세상을 한꺼번에 바꾸려하기 보다 각자가 자기 주위를 밝히는 촛불이 되어 그 빛이 전체로 퍼져 나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정말 힘들거나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면 나는 다시 그때의 선택을 떠올린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볼게요.”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