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교촌리에서 80년만에... 무령왕릉과 유사한 형태로 연구가치 커

동쪽 방향에서 송산리고분군을 바라본 교촌리고분 전경.

(동양일보 유환권 기자) 공주시가 문화재청과 함께 공주 교촌리에서 백제 전축분 탐색조사를 통해 무령왕릉과 유사한 형태의 새로운 백제시대 전축분을 확인,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교촌리고분의 존재는 1530년(중종25)에 편찬된 『新增東國輿地勝覽』의 公州牧條에 “향교의 서쪽에 무덤이 있는데, 백제왕릉이라고 전한다”라는 기록을 통해 조선시대에도 이미 알려져 있었음이 밝혀진바 있다.

교촌리 전축분에 대한 조사는 일제강점기인 1939년 사이토 다다시(齊藤忠)와 가루베 지온(輕部慈恩)에 의해 발굴조사된 이후 구체적인 위치를 알 수 없었다.

특히 가루베 지온(輕部慈恩)이 미완성고분이라고 정의한 이후, 1971년 송산리고분군 내 무령왕릉이 발굴조사되면서 교촌리 전축분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이번에 공주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교촌리 전축분의 위치를 확인함으로써, ‘새로운 백제시대 전축분’과 80여년 만에 재회하게 된 것이다.

조사 결과, 백제시대 전축분 1기와 방형의 석축 단시설을 확인했다. 전축분은 일제강점기 3호 전축분으로 조사된 것으로, 무령왕릉·송산리 6호 전축분과 같은 터널형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무덤의 축조에 사용된 전이 모두 무늬가 없는 방형과 장방형전이며, 벽면은 전(塼)을 횡으로 쌓아서 만들었는데, 이는 무령왕릉이나 송산리 6호분과는 다른 모습이다.

조사단은 교촌리 전축분이 무령왕릉 축조를 위한 연습용의 미완성분인지, 아니면 백제 웅진기 중국적 예제(禮制)의 도입과 함께 수용된 전축분의 새로운 유형인지, 무령왕릉 이전에 조영된 왕릉격의 무덤인지에 대해서는 추후 연구를 통해 구체적인 성격을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백제 웅진기에 만들어진 전축분은 그 사례가 많지 않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송산리고분군 내 무령왕릉과 6호 전축분이 있다. 다행히 이번에 진행된 교촌리 3호분에 대한 재발굴조사를 통하여 백제 전축분의 새로운 유형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됐다.

공주 유환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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