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김영이 기자) 한반도가, 아니 세계가 뜨겁게 요동친 하루였다. 멀리 싱가포르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 세기의 회담을 가졌다. 이들은 그 결과물을 담은 공동합의문에 서명하는 역사적인 ‘일’을 해냈다. 

잘 돼가는 가 싶었던 북미정상회담 준비는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원하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철렁하게 한 고비도 있었다. 지난달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비난 담화가 있자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회담 취소로 응수한 게 그것이다. ‘강경’에 ‘초강경’으로 답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트럼프의 회담 취소 발언 9시간 만에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내세워 공손하게 그의 마음을 돌려세우려고 했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북한의 유화책이다. 회담의 끈을 놓지 않고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룩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사실 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가치면서 비핵화 의사를 표명하긴 했지만 미국과 일본, 남한 내에서는 “설마”라는 근원적인 의구심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한국전쟁에서 서로 총을 겨눴던 북미가 대립과 반목을 해 온 것을 감안하면 과거의 프레임을 깬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웠다. 
따라서 북미 양국 정상이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양국 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되고 특히 비핵화를 비롯해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여정의 위대한 첫발이 아닐 수 없다. 

적대국인 양 정상이 만날 때는 현안에 대한 사전 조율이 어느 정도 이뤄졌을 것이다. 세계인들의 큰 기대 속에 마주했는데 빈 손으로 돌아선다면 실망을 넘어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솔직히 말해,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회담장에 먼저 도착해 보여준 상기된 얼굴 표정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굳은 표정, 그 흔한 제스처도 없이 회담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국민들은 일이 잘 안풀렸나 하고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이 평소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며 회담 결과를 낙관했고, 회담이 시작되기 전 “오늘 회담이 엄청나게 성공할 것, 북한과 매우 훌륭한 관계를 맺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접하면서 애써 태연해지고 싶었다. 김 위원장도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해 이번 세기의 회담에서 좋은 성과를 기대하게 했다. 
두 정상은 만난 지 4시간30분만에 공동합의문에 서명하는 것으로 세기의 회담이 성공적이었음을 알렸다. 그 순간 세계는 숨 죽였다. 
공동합의문에는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보장, 북미관계 정상화 추진, 6.25전쟁 당시 전사자 유해 송환 등 4개항이 담겼다. 

합의문에 서명하는 모습은 정상회담이 이미 모두 준비된 뒤 나온 결과물을 위한 만남이었음을 말해 줬다. 역사적 첫 만남을 앞두고 두문분출하던 김 위원장이 늦은 시간(현지시각 오후 9시)호텔을 나와 유명 관광지를 돌아봤다는 사실은 파격 그 자체였다. 실무회담에서 많은 부분이 합의되지 않았다면 밤늦게 한가로이 유명 관광지를 둘러 볼 여유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전날 이미 회담이 성공적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실무회담을 통해 김 위원장처럼 성공적인 결과를 충분히 예측했을 거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후 기자회견을 통해 조만간 종전이 있을 것, 후속회담 다음주 개최, 평양과 백악관 방문,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을 밝히면서 “김정은과의 회담이 정직하고 생산적이었다. 김정은은 역사적 인물로 기록될 것”이라는 말로 회담의 성과에 대해 만족해 했다. 

트럼프는 김 위원장을 만난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매우 좋다. 영광스럽다”고 했다. 미국 대통령이 적대국의 수장을 만나는 게 영광스럽다는 말은 특별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위원장도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이 때로는 눈과 귀를 가렸다는 말로 만남이 쉽지 않았음을 털어놓았다. 
결과는 북미가 6·25 전쟁 발발 이후 68년간 이어온 적대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중대한 일보를 내디뎠다는 점이다. 한반도 평화가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해 준다. 이제 시작이다. 뒤돌아 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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