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기 황 논설위원 / 시인

나 기 황 논설위원 / 시인

(동양일보) ‘한 공간, 한 주제’를 카메라에 담은 72시간의 영상기록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TV프로그램이 있다. ’다큐멘터리 3일‘이란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다. 노량진 고시촌의 막막한 청춘들의 이야기, 창신동 봉제골목의 고단한 삶의 모습, ‘블랙이글스(680회-6월3일)’를 타고 에어쇼를 보여주는 공군조종사의 아찔한(?)일상까지 잔잔한 감동을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한 공간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시나브로 스며드는 시간 3일, 한 공간이 가진 시간의 흐름 위에서 '진짜'를 마주하고 해석하는 과정, 우리가 잊고 사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기획의도를 밝히고 있다.

기획의도와는 좀 거리가 있지만, 지난 12일 ‘세기의 담판-북미정상회담’을 ‘다큐 3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워낙 세계의 눈이 쏠려있는 회담이라서 두 정상의 싱가포르 도착부터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가기까지의 동선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다큐멘터리가 될 것이다.

#첫째 날(10일): 중국국제항공 에어차이나기가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하자 인민복을 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내린다. 북한 전용기 참매 1호 ‘PRK-615’의 모습도 보인다. 김 위원장은 숙소인 세인트 리지스 호텔로 이동한 뒤 저녁에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를 만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한다. 캐나다 G7회의에 참석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파야레바 공군기지에 도착한 후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로 이동한다. 마이크 폼페오 국무부 장관과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존 볼튼 국가안보보좌관,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의 모습이 비친다. 24시간 경과.

#둘째 날(11일): 양 숙소 호텔주변과 회담장 주변의 삼엄한 경비가 배경처럼 보인다. 김 위원장은 오후 9시 경, 김여정 부부장과 수행원, 수십여 명의 경호원을 데리고 깜짝 외출로 심야 시티투어에 나선다. 마리나베이에 위치한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식물원,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타워 3, 싱가포르의 오페라하우스로 불리는 에스플레네이드를 들른 후 11시경 숙소로 돌아온다. 시티투어 중에 싱가포르 외무장관을 만나고 옹예쿵 전 교육부장관과 셀카를 찍는 모습도 보인다. 48시간 경과

#셋째 날(12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각각 숙소에서 나와 회담장소인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로 향한다.

한반도 시각으로 12일 오전 10시, 6개의 성조기와 6개의 인공기로 꾸며진 회담장 레드카펫을 밟으며 두 정상은 마주섰다. 12초간의 악수가 이어지고, 한반도 분단 70년 만에 북미 정상 간 회담이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단독회담, 확대정상회담, 업무오찬으로 이어진 북미정상회담은 오후1시 40분, '6·12 싱가포르 공동합의문'에 서명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합의문 첫째 조항에는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평화와 번영을 위한 양국 국민의 바람에 맞춰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6월 12일 센토사 합의는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을 해체한 세계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북미정상회담을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시간 넘게 기자회견을 마친 후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싱가포르를 떠났다. 김정은 위원장을 태운 중국국제항공 보잉747기도 저녁 11시 23분(현지시간) 싱가포르 창이 공항을 이륙했다. 72시간 경과.

역사는 변화를 요구하며 진화한다. 미래의 역사는 아직 쓰여 지지 않았다.

‘다큐 3일’의 눈은 앞으로 72시간의 역사적 진실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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