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전 8승’ ‘선거불패’ 전무후무 기록

(동양일보 지영수 기자) 그에게는 패배란 없었다. 8번의 선거에서 모두 승리하는 ‘선거 불패’의 신화를 이어갔다.

이시종(71) 충북지사 당선인이 정치역정에서 일궈낸 결과다. 8전 8승. 이 당선인이 세운 전무후무한 대기록이다. ‘선거의 달인’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다.

1947년 4월 18일 충주시 주덕읍 덕연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태어나 충주사범병설중학교를 다니며 선생님이 되는 꿈을 키웠다. 하지만 3학년 때 5.16군사정변이 일어나 사범학교와 병설중학교가 통째로 없어지는 바람에 교사의 꿈을 접고 청주고로 진학했다.

고교 입학한지 몇 달 안 돼 아버지가 숨지면서 집안형편이 어려워 학비를 벌기 위해 농부와 광부·지게꾼·참외장수 등 온갖 시련 끝에 고교과정을 4년에 마쳤다.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꿨다. 고향에서 농사일을 하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본떠 ‘부농발전 5개년 계획’을 세워 대농의 꿈을 키웠다.

그런데 서울대에 다니던 고교 동창의 편지를 받고 고민 끝에 인생의 진로를 바꾸기로 마음을 먹고 무작정 상경, 공부를 시작한지 7~8개월 만에 서울대 정치학과에 들어갔다.

당시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만이 서민의 아픔을 안다’는 진리를 깨닫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일하겠다는 신념을 갖게 됐다.

1971년 대학을 졸업하던 해 행정고시(10회)에 합격해 목민관의 길로 들어섰다. 충북도 법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지 4년 만에 능력을 인정받아 내무부(현 행정안전부)로 발탁됐다.

이어 강원도 기획담당관, 관선 영월군수와 충주시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충북도 기획관리실장, 내무부 공보관 등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오가며 행정경력을 쌓았다.

1994년에 우리나라 지방자치 실무 총책인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장을 맡아 지방자치시대를 여는데 기여했다. 이를 몸소 실천해 보고자 공직을 사퇴하고 지방자치제 부활 원년인 1995년 충주시장에 출마해 당선, 내리 3선 연임에 성공했다.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해 2004년 4월 충주시장 자리를 내놓고 17대 총선에 출마, 당선돼 국회로 진출했다. 4년 뒤 치러진 18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청주고교 동창이자 친구인 당시 한나라당 윤진식 후보를 물리치면서 정치인으로서 성공한 모습을 보여줬다.

2010년 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현직이었던 한나라당 정우택 후보와 맞붙어 승리를 거머쥐고 충북도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이 때 ‘선거의 달인’이라는 닉네임도 얻었다.

7번째 선거인 6회 지방선거에서 6년 전 맞붙었던 여당(새누리당) 윤 후보를 다시 한 번 누르며 재선에 성공했다. 이번 선거에서 승리, 충북 첫 ‘3선 도지사’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민선 5,6기에 이어 7기 도정을 책임지게 될 이 당선인의 어깨는 무겁다. ‘160만명 시대’에 걸맞게 충북의 도격(道格)을 높여야 할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

지난 8년간 충북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고 자부하는 이 당선인은 이제는 ‘1등 경제 충북의 기적’을 완성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경부축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강원~충북~호남을 연결하는 ‘강호축’ 개발을 통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전국 대비 4%(1인당 GRDP 4만달러) 충북경제를 조기에 달성하고 5%에 도전해 1등 경제 충북의 기적을 완성해 나가겠다는 포부다.

이 당선인은 “그동안 갈고 닦은 풍부한 경험과 노련함으로 충북호를 ‘1등 경제 충북 기적의 땅’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지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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