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상임이사

(동양일보 유영선 기자) 선거가 끝났다.



흥겹게 춤을 추며 홍보하던 선거꾼들과 유세차도 사라지고, 거리엔 홍보 현수막 대신 감사인사의 현수막이 내걸렸다. 당선자에겐 축하의 박수를, 그리고 아쉽게 진 후보에겐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이제 모두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 선거기간 동안 있었던 기쁨, 감사함, 아픔, 섭섭함 같은 일들은 과거로 돌리고 새 걸음을 준비할 때다.



선거기사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기사에 밀려 눈에 띄진 않았지만, 며칠 전 재미있는 기사가 소개됐다. 네덜란드 총리의 에피소드다. 뒤늦게 유투브가 돌면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이 동영상은 정치인의 자세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며칠 전 뤼테 총리는 커피를 들고 헤이그에 있는 건물의 보안대를 통과하다가 실수로 커피를 바닥에 쏟았다. 금세 주변 바닥이 커피로 흥건해졌다. 잠깐, 이럴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특히 그 주인공이 우리나라의 고위직 관료라면. 깔끔한 양복을 입고 회의에 들어가는 대기업임원이라면. 대답은 상상에 맡기고, 뤼테 총리의 모습을 보자.

뤼테 총리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인 뒤 들고 있던 서류를 보안대 위에 올려놓고는 옆에 있던 청소부에게 대걸레를 달라고 해서 직접 바닥을 닦았다. 대걸레뿐 아니고 남은 자국은 손걸레로 깨끗이 닦았다. 걸레질을 하는 총리를 본 건물 내 청소부들은 손뼉을 치며 다가왔고, 다같이 함박웃음을 웃었다. 이 영상은 네덜란드 공영방송인 NOS 방송 카메라에 포착돼 유포됐다. 보여주기식인 이벤트가 아닌, 자신이 쏟은 커피를 끝까지 청소하는 총리의 소탈한 모습은 낯설면서도 신선하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배워야할 태도라고 여겨진다.



이번 선거에서도 유권자들은 고개 숙여 인사하는 후보들을 보면서 ‘당선되면 저 인사가 사라지겠지, 저 목에 깁스를 하겠지’라고 조크를 던졌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선거전과 선거후 달라지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왜 그럴까. 의원이 되면 단체장이 되면, 거리에서 보호막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일까. 시민의 대표로 뽑힌 의원이 시민들의 세금으로 만든 세비를 받으면서도 시민이 무서운 줄 모른다.

업무상 관계하는 공무원은 마치 하인을 다루듯 한다. 오죽하면 공무원이 의원의 가방을 들고 따라가는 것 정도는 상시일이라니 정치인의 권한이 인권보다 위에 있는 것 같다.



굳이 스위덴 예까지 들고 싶진 않지만, 보좌관도 없이 1년에 평균 87개의 법안을 발의하는 스웨덴 국회의원들은 스톡홀름에 거주할 경우 원칙적으로 버스나 전철 트램 등의 대중교통으로 출퇴근 해야 한다. 어쩌다가 혹시 택시라도 타면 곤란해지는 것이, 그 비용을 청구하려면 3장 이상 분량의 사유서를 작성해야 하고, 자기 돈으로 처리한다고 해도 시민들이나 사무처, 또는 소속 정당 관계자가 이를 알면 적절한 이유를 대야만 한다. 업무용 신용카드 사용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정치인들은 특권과 특혜가 너무 많다.



그래서 부탁인데 우리도 이참에 정치 문화를 바꾸면 좋겠다. 시민들은 누가 일을 잘 하는지 청렴한지 이타적인지 모니터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고, 정치인들은 약속했던 공약을 지키고자 최선을 다 해야 한다. 가장 부탁하고 싶은 것은 진실성과 겸손한 태도, 그리고 소박함이다. 의원이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안되는지, 의원이 직접 배낭을 메고 의회에 들어가면 격이 떨어지는지, 의원이 직접 커피를 타서 마시면 안되는지. 결론은 특권 없는 정치, 특권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결국 시민의 몫이다. 시민들이 깨어 있고, 요구하고, 정치에 관심을 갖고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가한다면 정치는 살아 움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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