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특활비 청와대 지원은 국고 손실”
“뇌물은 아냐” 판결…박·MB 재판에 영향

(동양일보 이도근 기자)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에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지원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국정원장 3명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반면 국정원으로부터 뒷돈 상납 혐의를 받았던 이원종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무죄 선고를 받았다.

남재준(왼쪽부터), 이병기,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 호송차로 향하는 모습.
남재준(왼쪽부터), 이병기,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 호송차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성창호 부장판사)는 15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과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남재준 전 국정원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에게는 각각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병호 전 원장에겐 자격정지 2년도 선고했다.

이들은 재임 시절 국정원장 앞으로 배정된 특수활동비 가운데 박 전 대통령 측에 각각 6억 원, 8억 원, 21억 원을 지원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들과 공모해 청와대에 돈을 전달한 이헌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따라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이병기·이병호 전 원장과 이헌수 전 실장은 실형 선고로 법정 구속됐다.

재판부는 “특활비는 국내·외 보안정보 수집 등 쓰임에 그 용도나 목적이 정해져 있다”며 “이를 대통령에게 매달 지급한 것은 사업 목적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에 위법”이라고 설명했다. 또 “엄정해야 할 예산 집행체계가 흔들렸고, 안전 보장에 해당 예산이 사용되지 못해 국가·국민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국정원에서 1억5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원종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대가를 바라고 건넨 ‘뇌물’은 아니라고 보고, 3명의 전 국정원장의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대통령의 요구나 지시로 특활비를 지급한 것은 사실이나 직무와 관련한 대가로 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국정원장과 대통령의 특수관계를 고려하면 편의 명목이었다고 한 것은 다소 막연하고 추상적이며 현실적인 (뇌물공여) 동기로는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며 “자금을 전달하면 어느 정도 편의를 받는 게 자연스러운데 그런 자료는 찾을 수 없고, 오히려 국정원장 재임 중 청와대와 마찰을 빚은 사례들이 있다”고 무죄 판단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대통령에게 특활비를 상납한 행위와 관련, 뇌물죄 핵심 요건인 직무관련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취지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선고결과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의 재판 결과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의 특활비 사건 재판도 같은 재판부가 심리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기일은 다음달 20일 열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정원 특활비 뇌물 수수 사건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이 전 대통령은 원세훈·김성호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약 7억원의 특활비를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관여한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은 금품 전달 방조범으로 구속기소 됐다.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과 장석명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국정원 돈을 전달받아 총리실 불법사찰 관련자를 입막음하는 데 쓴 혐의로 오는 28일 1심 선고가 예정된 상태다.

국정원이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특활비를 전달했다는 사건의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에 이날 판결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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