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한글터득 문해교실 수강생 시화전 영동 황간역에서 최정란 시인 마련

경북 왜관에서 온 이한순 씨 일행이 영동황간역 대합실에 마련된 성인 문해교실 수강생 시화전을 둘러보고 있다.

(동양일보 이종억 기자) ‘간판이 보입니다. 세상이 보여요. 딸 이름도 써봤어요.’

한글을 뒤늦게 깨우친 문해교실 성인 수강생들이 직접 쓴 글을 전시하는 ‘시화전’이 열려 눈길을 끌고 있다.

영동군 문해교실 지도교사 최정란 시인은 15일부터 30일까지 영동 황간역 대합실에 마련된 전시실에서 수강생 22명이 참여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문해교실은 읽고 쓰고 셈하기가 부족한 성인들이 한글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돕는 평생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다.

최 시인이 맡고 있는 문해교실은 영동군 심천면 심천리, 영동군 양강면 묵정 마을, 영동군 장애인 복지관 등 3곳으로 수강생 대부분이 환갑을 훌쩍 넘긴 노인층이다.

이번 시화전에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수강생들이 시 형식을 갖춰 인생경험이나 한글을 깨우친 즐거움, 꿈과 희망을 직접 손 글씨로 쓰고 그림까지 그려 넣어 만든 것이다.

묵정리 문해교실 수강생인 정구선(84) 씨는 “학교에 다니니/내 마음이 장미꽃 되네/한글을 배우니/온 세상이 내껏 같네/거리에 간판도 보이네/우리 동네 가는 버스도 보이네/주소도 보이네/학교에 가기를 참 잘 했네/너무 행복해/우리 모두 열심히 공부꽃을 피웁시다”라는 작품을 제출했다.

심천 문해교실의 이병순(92) 씨는 “한글을 배우니 즐거워요/나이들어 배우는 건/쉽지 않네요/알면 알수록 자신감이 생기네요/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아요/우리 집 주소가 보여요/눈이 환해졌어요/더듬더듬 글을 읽어요”라고 늦게 한글을 깨우친 즐거움을 표현했다.

이밖에도 최금년(82) 씨는 “부지런히 한글을 배워 손자손녀에게 동화책을 읽어줘야 겠다”는 희망을 시로 노래했고, 배이순(77) 씨는 “한글을 배우고 나니 간판을 읽을 수 있었다. 딸 이름도 썼다. 아들이 놀라며 기뻐했다. 전화번호도 써보았다. 세상이 환해 보였다”라고 썼다.

경북 왜관에서 황간역을 찾았다는 이한순(여·58) 씨는 “연세 많으신 분들이 한글을 깨우치고 이렇게 글을 쓴 것을 보니 마음이 찡한 게 눈물이 날 것 같다”며 “장하고 대견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정란 시인은 “성인 문해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이 프로그램 참여자의 학습성과를 격려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며 “시화전을 계기로 한글을 몰라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주민들이 찾아가는 성인 문해교실에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동 이종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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