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겸 청주시청원보건소영하보건진료소장

 

 라인댄스 발표회 연습장으로 가려고 어르신들을 모시러 갔다. 골파 모종할 것을 고르고 계신다. 어르신 한 분이 “소장님, 골파 씨하고 남은 것 다듬은 건데 한 번 드셔보시라”라며 건네주신다. 가는 동안 골파를 이용한 요리법에 관한 이야기로 차 안이 떠들썩하다.

지도강사가 자리 배정을 해주는 날이다. 자리가 대충 정해지고 강사 구령에 맞춰서 옆으로 하나, 둘 이동하면서 손을 밖에서 안으로 돌리며 반짝반짝하라고 하는데 어르신들의 손이 잘 맞질 않는다. 강사가 손 모양 자꾸 틀리면 자리 바꿔 뒤로 보낸다고 웃으면서 엄포(?)를 놓는다. 그 말에 놀라 뒤로 밀리면 어떻게 하나 싶어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귀여워 보인다.

연습이 진행될수록 평균 나이 75세의 어르신들의 동작이 뚜렷해지고 줄도 척척 맞추고 무척 멋있어졌다. 강사의 지적에 안 하겠다고 투정 부리시던 모습은 간 곳 없고 재미있어 어쩔 줄 몰라 하신다. “이 머리로도 외워지는 걸 보면 치매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라며 까르르 웃으신다. 어르신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치매인데 늘 모여서 수다를 떨고 지금은 댄스 동작을 익히느라 머리를 계속 쓰고 있으니 그야말로 치매는 여기 모인 어른들과는 무관한 이야기임이 틀림없다.

마지막 연습 날이다. 무대 복장까지 갖추고 리허설을 한다. 주름진 얼굴이지만 오랜만에 분칠하고 고운 립스틱도 바른다. 서로들 분장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예쁘다 하시며 즐거워하신다. 분위기가 고조된 탓인지 완성된 라인댄스를 제대로 보여주신다.

최종 리허설을 하는 날이기에 어르신들을 격려하기 위해 먹을거리를 준비했다. 챙겨주신 골파로 만들어놨던 파김치, 삶은 달걀을 곁들이고, 이제 막 움이 트기 시작한 냉이를 듬뿍 넣어 냉이 김밥도 만들었다. 어머니께 드린다 생각하며 없는 솜씨이지만 정성을 다했다. 마음이 통했는지 소찬임에도 어르신들이 무척이나 맛있게 드신다. 내 작은 수고가 이분들에게 기쁨을 드렸다고 생각하니 흐뭇하다.

드디어 발표회 날이다. 농촌지역 건강증진 프로그램의 하나로 청주시 각 구에 소속돼 있는 25개 보건진료소가 모두 참여한 행사로, 2개월여 동안 배워온 것을 뽐내는 날이다. 우리 팀은 청원보건소 내에 있는 7개 진료소에서 30여 명이 한 팀을 이뤄 참가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동안 모두가 열심히 했기에 실수하지 않고 잘 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제일 고령인 춘자 어르신은 밤새도록 라인댄스를 추는 꿈을 꿨다면서 오늘은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니 믿어도 되지 않을까.

연기가 펼쳐지고 있다. 어느 팀 가릴 것 없이 모두들 열심이다. 각양각색으로 만개한 꽃들의 춤사위가 멋들어진다. 제 눈이 안경이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그중에도 검정 바지에 흰색 블라우스, 멋진 선글라스에 빨간 머리띠로 아름답게 치장한 우리 팀이 제일 멋져 보인다. 이 시간만큼은 참여한 분들 모두가 멋지고 아름다운 댄서임이 분명하다.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가슴이 찡하니 눈시울이 젖어온다. 당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낸 뒤 훈장처럼 주어진 노구(老軀)로 흐르는 선율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어서다. 저분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춘자 어르신의 부군께서 장미꽃 한 다발을 가지고 오셨다. 생전 처음 이런 무대에 나왔다면서 감격에 겨워하신다. 눈물을 글썽이신다. 주름진 얼굴 사이로 긴 날들을 함께 살아낸 삶의 여운이 느껴지는 듯하다.

어르신들의 웃는 얼굴을 사진 속에 한 컷 한 컷 담아 본다. 농촌에서 얼굴에 분바르고 근사하게 차리고 남 앞에 나서는 일이 며칠이나 될까. 늘 땀내 나는 옷 걸치고 고무줄 바지 입고 장화 신고 농약 홍보용 모자를 눌러쓰고 밭에서 살던 일상인데 잠시나마 그분들에게 일상 탈출로 행복을 줬다고 생각하니 더할 수 없이 기쁘다. 때로는 버거웠는데 보람으로 승화되는 듯하다. 함께여서 할 수 있었던 이 시간. 처음에는 한 발짝 떼는 것도 어지럽다 하시고, 순서 익히는 것도 벅차 하시더니 무척이나 훌륭하게 잘 해내신 우리 어르신들. 오늘의 감동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오래도록 기억되리라. (동양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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