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양파는 억울하다. 고혈압 환자들의 혈압을 낮춰주는 등 건강식품이라는 자부심 속에서 인간들의 사랑을 받아왔는데 요즘 부쩍 ‘까도 까도 양파껍질’이라는 불편한 별명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인사 청문회때는 내정된 인사들의 각종 의혹이 까도 까도 나와서 양파를 괴롭히더니 6.13 지방선거 때도 후보들의 불법 부도덕한 의혹이 까도 까도 나와 양파를 못살게 굴었다.

‘개가 짖어도 열차는 간다’는 어느 야당 대표의 말처럼 그나마 선거가 끝나 한숨 돌리는가 했는데 이번엔 문화예술계에서 성희롱 성폭력 피해사례가 줄줄이 폭로되면서 ‘미투는 까도 까도 양파껍질’이라는 말이 나오기에 이르렀으니 양파는 정말 죽을 맛이다.

하지만 진짜 억울한건 ‘양파가 아니라 피해여성들’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인권위원회 주도로 출범한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특별조사단'이 19일 공식 활동을 종료하면서 그간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 분야 여성종사자들의 절반 이상이 성희롱·성폭력 등 성범죄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자는 주로 선배 예술인, 기획자 및 감독(연출, 편집장, 기획위원, 프로듀서 등 상급자), 대학교수·강사 등으로, 위계에 의한 성범죄가 자행되고 있었다.

대학교수에 의한 학생 성추행, 영화배급사 이사의 직원 성추행, 웹드라마 제작사 간부의 배우 성추행, 유명 가수의 작사가 성폭행, 무용수의 여성동료 신체 부위 도촬 등 형태도 다양하다. 문화예술계에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폐쇄적이고 내부 위계질서가 엄격하며 도제식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특수한 환경 탓이기도 하다.

더구나 일부 피해자들은 ‘그냥 참고 넘어간다’고 답한 사람들은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고, 문화예술계 활동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우려돼서였다고 하니 우리 사회의 인권 보호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주는 일이 아닐수 없다.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현재 정부가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 예방교육 강화를을 위해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성폭력 등 가해자에 대한 처벌 및 행정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의 형법,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 국회계류 중인 이것부터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

또한 피해자가 아무리 위험을 무릅쓰고 고발한다 해도 시간이 흘러 가해자들이 업계로 복귀한다면 함께 일해야 하는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법적인 형벌 외에도 가해자들이 해당 업계에 돌아오지 못하도록 제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 ‘양파에게 미안한’ 일이 조금은 줄어들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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