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청주시청원구지역경제팀장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우리 집에서 아침밥 먹는 풍경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간 주먹밥이 아이들의 아침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는데 그마저도 소명을 다하고 달콤한 꿀잠이 자리를 차지한다.
아침을 항상 챙겨 먹는 학생들이 그렇지 못한 경우보다 수능 성적이 6~8점이나 더 높고, 평균 점수가 8.5점 더 높으며, 특히나 아침을 전혀 먹지 않는 여학생은 외국어 영역에서 고득점을 얻을 확률이 매일 먹는 여학생의 1/5도 안 된다는 객관적인 연구결과도 아이들의 꿀잠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아침 꿀잠으로 포기한 아침밥, 막장 드라마와 휴대폰으로 향하는 시선, 유리식탁을 울리는 젓가락과 숟가락 소리 외 정적만이 맴돌던 저녁식사 시간이 그간 우리 집의 밥상머리 풍경이었다.
지금도 아침 밥상머리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최근 우리 집 저녁 풍경은 긍정적인 대화가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투 운동을 바라보는 시각, 남북 정상회담, 미국과 북한 정상의 만남, 그리고 6.13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그 주제는 사회상을 반영하듯 다양하다. 이제 중3인 큰 딸도 제법 자기만의 사회적 시각을 갖고 있어 아빠와의 주말 저녁 밥상에선 가끔 냉랭한 ‘썰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저녁을 먹으며 막장 드라마를 즐겨보던 나도 잠시 그 궁금증을 뒤로한 채 아이들과의 눈 맞춤과 그날그날의 소소한 이야기로 대화를 이어가기로 마음먹는다. 물론 바쁘다는 핑계와 애정의 드라마 자리를 언제까지 내어줄지는 모르지만 그 마음만은 지금도 변함없다.
일요일 오후, 무료한 시간을 보내던 큰 딸이 목령산 등산을 화두로 꺼냈다. 외부 활동을 꺼리는 둘째만 남겨놓고 우리는 장미공원 입구로 향했다. 남편은 오창산단 애증자로서 맏딸의 제안이 마냥 신난 듯 발걸음에 리듬을 실어 정상을 향한다. 아파트를 나서면 산책로가 있고, 그 산책로는 호수공원을 돌아 목령산으로 이어지고, 고속도로 나들목에 터미널까지 갖춘 오창산단을 무척 사랑하는 가장은 가족과의 목령산 산책이 어찌 신나지 않으리오. 목령산 입구 계단부터 정상 정자에 오르기까지 쉴 새 없던 목령산 자랑은 정상의 정자 기둥에 새겨진 낙서를 보기 전까지 계속됐다.
그날의 목령산 등산은 저녁 밥상머리 화제가 된다. 정상 기둥에 새겨진 낙서를 해결할 수는 없을까? 밥 한 술에 오가는 얘기 속에 ‘해맞이 소망판’을 만들면 어떨까로 매듭짓고 공무원 제안으로 귀결된다.
사실 그간 오창산단 작은 변화에는 남편의 제안이 소소히 녹아들었다. 호수공원 잔디밭에 앉아 신축 건물에 우후죽순 설치된 간판들을 보면서는 그 당시 담당자인 나에게 신도시다운 간판 만들기를 채근했고, 최근 통합 시청사 건립을 위한 시민제안으로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말 밥상머리 대화에 주제를 툭 던지면 우리 가족은 자기 생각들을 형식 제한 없이 밥 한 술에 얹어낸다. 나는 무심코 얹힌 생각을 주워 담아 내 생각으로 재탄생 시킨다. 이것이야말로 밥상머리 대화로 청주시를 그리는 바람직한 생활 아이디어 아니겠는가?
요즘은 가족 구성원 각자의 공부로 주제를 던져도 재탄생되는 생활 아이디어가 뜸하지만 조만간 소재를 열심히 찾아 밥상에 던져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