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에게 배급 받은 빵을 나눠주는 캣맘. 쿠바 어디라도 동물을 친구 삼는 사람들이 흔하다. 원래 그들 삶의 터전이란 사실을 잊지 않은 듯....

(동양일보 김득진 기자) 매가 날지 않는 쿠바 하늘은 마침표 빠진 문장이다. 까미용이나 꼬꼬 택시 매연이 떠드는 것과 다르다는 걸 무리 지어 삐라처럼 뿌려댄다. 문짝 달아난 탈것 주위에 떠도는 매캐한 냄새며 원유 정제 기술 뒤떨어진 탓에 눈, 코, 목이 따갑지만 날짐승의 힘찬 날갯짓이 드넓은 바다로 날려버린다. 자본주의 싫어 날아든 놈들은 지상의 오염을 까마득 잊게 해 주고, 비어버린 자리에다 바다의 맑음을 갈무리한다.

골목 더듬어나가는 동안 톤 높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누가 귀한 아기를 울리나 싶어 귀 기울이다가 소리 난 곳을 조심조심 찾아가서 실체를 확인한다.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건 발정기마다 소름 돋게 만드는 길고양이다. 그런 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피하기 바빴는데, 여기서도 걔들과 맞닥뜨릴 줄이야. 사람 사는 곳인데 다를 까닭이 있을까 싶어 골목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어둠 속을 유심히 살펴 나간다. 사람 먹을 게 모자라는 나라인데 길고양이 배 불릴 여력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혈액 속 염분 농도가 사람과 다른 데도 음식 찌꺼기를 먹어야 하는 걔들 신장이 성할 리 없다는 걸 떠올린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눈에 띄는 길고양이는 죄다 비쩍 말라 있다.

혹시, 여기에도 캣맘이 있는 건 아닐까 싶어 골목을 훑어나간다. 볼거리 넘치는 곳이지만 시야를 좁혀 어둠 속 여기저기를 더듬는다. 천천히 옮겨가던 걸음이 자그마한 공원 구석진 곳에서 딱 멈춘다. 저무는 해가 마지막 열기를 부려 놓는 시간, 늘인 엿가락 같은 그림자 하나가 공원 벤치에 몸을 뉘고 있다. 임자 찾으려고 뒤돌아보니 머리 희끗한 중년 여자다. 그녀는 빚진 걸 갚으려는 자세로 손에 쥔 빵을 뜯어 길고양이 앞에 떨어뜨리고 있다. 해질녘엔 먹을 걸 준다는 걸 기억한 길고양이가 하나 둘 모여들고, 늘 그랬다는 듯 여남은 마리가 머릴 맞대고 오물거리며 먹이를 먹는다. 배급 받은 빵을 길고양이에게 던져 주고 나면 가족들은 어쩌려고 그러는지. 내 눈치 따윈 아랑곳없이 길고양이를 어루만지는 캣맘, 그들을 돌보는 자세는 자식 다독거리는 거랑 조금도 다르지 않다.

아픈 다리를 끌고 1930년에 지어진 나시오날 호텔에 들어선다. 객실 넘보려는 파도가 저만치 밀려드는 정원, 대왕야자 그늘에서 쉴 겸 에스프레소를 주문한다. 모이 찾는 수컷 공작이 테이블 곁을 유유히 스쳐가지만 손님들은 놈의 움직임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관광객에게 숱하게 치였을 텐데 모이 찾아 어슬렁거리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조차 없는 듯하다. 공작은 공작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제 할 일에 몰두할 뿐. 더운 게 일상인 나라에서 서로의 일에 지친 탓이라 여긴다. 막 내려놓은 데미타세를 기울여 홀짝거리다가 대왕야자 예사롭지 않은 그늘에 폰을 겨눈다. 별 다섯 개 호텔 정원을 배경으로 찍었으니 뷰 파인더로 봐도 영상미가 빼어나다. 내친 김에 야자나무에서 한걸음씩 물러나며 호텔 전경을 동영상으로 찍는다. 짙푸른 바다와 야자수 속에 끼워 넣은 호텔 건축미는 묻거나 따질 필요가 없다. 미국 향해 겨눈 시커먼 대포를 유토피아 돋보이게 할 소품으로 쓴 곳이니까.

그때 말쑥한 청년이 대왕야자 그늘로 성큼 들어서고, 허리를 굽혀 뭔가를 살포시 집어 품에 감춘다. 그게 뭔데 저토록 소중하게 다루나 싶어 다가서서 빠끔 들여다본다. 날짐승 새끼 같은데 문장의 마침표 역할을 할 놈의 눈이 반쯤 감겨 있는 게 심상치 않다. 어쩐 일인가 물었더니 조금 전부터 어린 새가 대왕야자 아래서 졸고 있더라고 대답한다. 새를 품에 안은 채 카페로 간 청년은 생수 한 병을 사고, 병을 따서 뚜껑에다 물을 따른다. 꼬박꼬박 졸고 있는 새 부리에 뚜껑에 든 물을 갖다 대도 반응이 없다. 측은한 표정을 짓던 청년이 부리를 억지로 벌린 뒤 뚜껑을 기울이지만 물은 고스란히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새는 점차 기운을 잃어간다. 나는 축 늘어진 청년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한다. ‘불쌍하지만 어쩌겠어. 놔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원망스런 눈길로 잠시 째려보던 청년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인 뒤 마지못해 풀숲에 새를 내려놓고서도 애처로운 시선을 떼지 못한다. 청년의 따뜻한 보살핌에도 신에게 돌아가기 위해 자연의 품에 목숨을 기꺼이 내려놓은 날짐승, 죽어서도 높푸른 하늘이 쓴 문장의 마침표 역할만은 잊지 않을 것 같다.

하늘을 떠돌 날짐승 상상에 빠져 있는 동안 털이 엉킨 개 한 마리가 등장한다. 테이블로 다가온 놈은 의자에 기대고서 책 읽는 남자 곁을 얼쩡거린다. 그걸 본 웨이터가 쟁반을 든 채 바삐 걸어온다. 개를 쫓으려 한다는 낌새를 챈 남자가 읽던 책을 덮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얘는 내 친구예요.’ 진짠지 거짓인지 알 순 없지만 그의 말 한 마디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서는 웨이터, 되돌아가는 걸음이 춤추듯 보이는 게 나만 느낀 감정일까. 조금 전 내뱉은 말이 거짓 아니라는 듯 남자가 일어서서 대왕야자그늘을 놀이터 삼아 개랑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쫓고 쫓기는 게 심심했던 남자가 개 짖는 소릴 흉내 내고, 짖는 게 어떤 건지 까마득 잊고 있던 개가 오래 전 기억을 되살려 냈는지 남자를 흉내 내서 마구 짖어댄다. 옆자리에서 그걸 지켜보던 여자가 인상을 쓰며 남자를 나무란다, 사람이랑 별다를 게 없는 동물을 학대하면 못 쓴다고. 길고양이며 매와 공작새, 그리고 떠돌이개가 더불어 살아가는 곳에서 더부살이 하는 인간, 캣맘이 길고양이에게 준 먹이는 사글세 대신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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