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림 청주시상당구 민원지적과

김규림 청주시상당구 민원지적과

주말에 ‘아이 필 프리티’(I feel Pretty)라는 영화 한 편을 보고 왔다.

“이게 정말 나에요? 정말 예뻐!”

영화 속 주인공 르네의 대사다. 머리를 다치면서 르네는 자신이 늘 꿈꿔왔던 완벽한 미모의 여성으로 보이게 된다. 단 본인의 눈에만!

생각과 같이 정말 뻔한 스토리였지만, 뻔했기 때문에 즐겁게 볼 수 있었다.

그녀가 아름다운 여성이 되게 해달라는 소원이 이뤄져 모습이 변했다면 이 영화는 판타지에 불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변하게 된다. 다시금 머리를 다쳐 본인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내 당당해지고 적극적인 모습이 된다. 영화가 끝날 때 즈음에 그녀의 모습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우리나라 여성에게 본인의 모습에 만족하느냐 묻는다면 대부분 ‘NO’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매스컴에 나오는 매력적이고 늘씬한 여성을 보면서 스스로 감옥을 만들기 때문이다. 스크린에 비친 아름다운 여성들을 미(美)의 기준으로 정하고 거기에 어긋나는 부분에 불만을 갖는다. 남들도 역시 나를 그렇게 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인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 이슈화되는 ‘탈 코르셋 운동’은 이런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벗어나자는 일종의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탈 코르셋은 보정 속옷을 뜻하는 코르셋을 벗어난다는 의미로, 남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 꾸미지 않을 것을 주장하는 사회적 운동을 말한다.

혹자는 꾸미고 싶은 사람은 꾸미면 되고 편하고 싶은 사람은 꾸미지 않으면 된다고 말한다. 물론 이 말도 맞는 말이다. 본인이 싫으면 안 하면 될 것을 무슨 사회적 운동이냐며 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이 운동이 여성들에게 국한되는 운동이 아니라 누구든지 남의 시선으로 억압돼 스스로의 모습을 가꾸는 데 지친 이들이 외치는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르네의 변화가 더 와 닿았다. 사회적 시선은 각종 운동을 통해 변하고 있는데 정작 나는? 타인이 나를 그렇게 볼 것이라고 여긴다면 어떠한 운동도 소용이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탈 코르셋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인식이 바뀌는 이 흐름에 나를 더욱 사랑하고 나에게 자신감을 가져 사회에 당당해지자는 것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들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인생은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라는 말처럼 나도 모르게 훌쩍 시간은 지나가버린다. 스스로 불평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움츠린 채 후회만 할 것인가?

화장을 했건 하지 않았건, 한껏 멋을 부리건 안 부리건, 타인의 기준에 맞건 맞지 않건 “나는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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