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 논설위원 / 중원대 교양학부 교수

정치적 성향의 글을 쓰는 걸 참 많이도 망설였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좌우로 포획된 한국 사회에서 사상을 규정당하고 싶지 않은 보호본능이라고 해두자. 그러나 지방선거 이후 항간의 정치 상황은 미간을 찌푸리게 하고 인식의 오류를 지나쳐가기에 선생이라는 존재가 무거워졌다. 사람도 잘 나갈 때와 힘들 때 그 인격의 민 낮이 드러난다. 이는 정당도 예외 없다. 선거에서 크게 이겼을 때 오만해지고, 충격적으로 졌을 때 자중지란에 빠진다. 이 나라의 시민으로서 불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여기저기서 ‘보수의 궤멸’과 ‘진보의 진격’을 논한다. 사실, 보수와 진보는 정치 지형을 설명하는 데 매우 협소한 용어이다. 역사의 전개가 도식적이기 때문이다. 혹여 나처럼 이도 저도 아닌 삐딱하게 혹은 샛길로 새는 위인들은 진보와 보수라는 획일적 잣대에서 얼마든지 비켜나갈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 사회에서 잉여인간으로 평가받을 수 없는 노릇 아니던가. 분단이 낳은 적대성은 우리 사회에서 보수-진보의 개념도 정치적 이익에 따라 진영논리로 늘 상 차용되었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는 현실에 대한 태도 차이일 뿐이다. 옳고 그름이 아닌 것이다. 지방선거 결과는 그 태도에 대한 시민의 평가이다. 보수에 대한 반감이 아닌 것이다. 코가 석자가 빠져있을 보수정당의 깨어있는 분들은 이점 유념하시라.



지방선거 완패 이후 리더십의 부재, 조직의 붕괴와 정체도 모호한 친이, 친박의 분열이 보수정당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여전히 이들은 지리멸렬하다. 이제 이른바 보수진영은 진보진영인 여당이 실수하기만 기다릴 게 뻔하다. 불행히도 승리에 도취한 여당도 그런 실수를 저지를 공산이 크다. 하긴 벌써부터 2020년 총선 압승이라는 김칫국 마시는 얘기가 도처에서 나온다.

그러나 시민은 위대하고 현명하다. 오만한 권력은 언제든 교체된다. 우린 이미 촛불 혁명을 통해 이를 경험한 나라이지 않은가.



거칠게 말하자면 자신들이 ‘모신’ 두 명의 대통령이 여전히 감옥에 있는데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만둔 보수정당의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과도한 카르텔로 그들을 맹종하던 친이, 친박 모두 그랬다. 탄핵 이후에도 지방선거 완패 이후에도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와 사죄를 외치지만 여전히 비대해진 몸은 기득권에 안주해있다. 진정한 반성이 없으니 개혁이 있을 리 만무하다. 제대로 된 성장담론의 보수 정책이 나올 리 없다.



콘텐츠는 빈약하다. 보수진영에서 경쟁력 있는 지식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존경받는 보수언론인, 종교인, 기업인도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존경하던 한양대의 리영희 교수는 생전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했다. 곱씹을수록 한국 사회 미래에 대한 혜안이다. 지금, 한국의 보수는 걸을 힘도, 비상할 날개도 잃었다. 극변하는 시대 변화에 둔감하다. 과거 화려했던 시절이 다시 돌아올 거라는 한여름 밤의 몽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이념적 퇴행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뒷걸음은 멀리 갈 수도, 똑바로 갈 수도 없다. 혈맹인 미국까지 나서서 한반도는 이제 평화공존의 시대에 접어드는데 아직도 안보 정치에 대한 미련과 향수에 젖어있다. 여전히 종북 타령이며 빨갱이 타령이다. 이건 보수의 정신이 아니다. 수구의 몽니일 뿐이다. 그걸 젊은이들이 이제는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보수의 난관이다.



보수의 화려했던 잔치는 시대의 흐름을 읽는 ‘통찰’이라는 성찬이 없었기에 이번 지방선거에서 찾는 이 없는 밥상으로 끝났다. 결과론이지만 지방선거의 프레임이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라는 안보 어젠다가 아닌 민생과 청년실업의 경제 어젠다였다면, 안정적 성장의 구호였다면 선거 결과는 덜 나빴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처럼 젊은 층에게 보수진영이 철저하게 외면당한다면 2년 뒤 총선에서 보수는 끝내 소멸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국 사회를 위해 결코 옳지 않다. 그러기 전에 보수여, 이념은 명확하되 고지식한 태도는 부디 이제 바꾸시라. 참된 보수의 길을 만인을 위한 한 걸음으로 뚝심 있게 걸으시라. 대한민국이라는 새가 좌우의 날개로 힘껏 날아야 하지 않겠는가.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