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논설위원/청주대명예교수

 ‘악의 축’, ‘불량국가’라는 오명을 들으며 ‘국제사회의 이단아’를 고수해 오던 북이 자유민주주의의 대표국가인 미국의 세계평화 십자군으로서의 적극적이고 단호한 제재행보에 백기를 들었다. 가까스로 두꺼운 장벽을 허물고 지구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은둔의 나라, 병영국가, 노예국가, 전체주의 국가 등의 폐쇄적 체제에서 국제사회 일원으로의 가입신청서를 낸 것이다. 수없는 밀당(밀고 당기기)의 게임, 반전과 반전의 되풀이 끝에 드디어 굳게 닫아놓은 빗장을 풀고 국제가족으로서의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다. 많은 수의 자국인민을 아사케 하였고 폭압정치를 통하여 통치에 순종하지 않는다고 보이는 측근을 무자비하게 총살케 함으로써 자국 인민에게는 공포를, 세계 인류에게는 분노를 들끓게 했던 폭군 및 독재자가 평화와 공존을 이상으로 하는 국제무대에 한 줄기 광명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제는 정상인으로 살겠으니 국제 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한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그 신청서를 접수할 수 있기 위해서는 북은 먼저 지구촌의 규범과 질서 등에 순응하겠다는 의지와 자세를 분명하게 보여야 한다. ‘비핵화’는 그에 대한 첫 단계의 조치인 것이다. 이에 직접 당사자인 한국과 미국이 나섰고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주요 강대국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3국인 싱가포르에서 북미회담이 개최되었다. 긴 시간의 노력 끝에 나온 봄바람이다. 마지막 남은 분단의 땅에 평화의 볕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회담이 성사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노력, 우여곡절 등을 겪어야 했기에 조우 행보도 요란하였다. 삼엄하고 철통같은 보안 속에 회담장소인 싱가포르의 센토스(평화와 고요를 의미) 호텔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북측의 전쟁 공포분위기 속에 깊은 한탄과 한숨을 멈출 수 없었던 지구촌 가족들은 깊은 회한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평화에 역행한 잘못이 컸던 만큼 북미정상의 만남은 자숙하는 분위기 속에 겸허하고 진지하게 진행되었어야 했다. 북은 세계를 전쟁의 위협에 처하게 한 것에 대하여,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핑계로 이를 방치한 것에 대하여 자성하는 자세를 취했어야 했다. 모두가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과 방송들은 큰 경사가 난 듯 ‘세기의 만남’, ‘세기의 담판’이라는 타이틀로 포장하면서 찬양 일색이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가 중요하다는 행보를 취하였다. 인권보호와 정의구현보다는 편의주의 및 현실중시주의 등에 집중하는 경향이었다. 인류 살상 무기인 핵으로 무장, 동족과 민주국가들을 적으로 삼았던 크고 깊은 비행은 옛일로 던져버리고 오늘의 이해에만 급급한 태도였다. 역사의 시계를 뒤로 가게 한 북의 지도자를 마치 개선장군을 대하듯 환호하는 이런 무원칙적이고 비정의적인 광경들을 보면서 ‘세상은 이런 것인가’라는 회심에 잠기게 하였다.

‘센토스 선언’이라 부를 수 있는 합의는 포괄적 성명서로 끝났다. ①평화와 번영을 위한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②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노력 ③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④한국 전쟁 포로와 전쟁실종자 유해 송환 등이 담겨져 있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한국의 속담처럼 포장의 화려성과는 달리 그 내용은 부실하였다. 미국의 국제 평화와 질서 및 정의 수호 등에 철학과 외교력은 미약하였다.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사익(다음 대선에서의 재선)과 미국 우선주의에 급급함으로써 세계지도자로서의 위상을 추락케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한국의 운전자론도 빛이 바랬다. 그도 그럴 것이 북은 세계와 국내의 압박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막다른 지점 및 구명조끼 없이 망망대해에 떠 있거나 외줄로 벼랑 끝에 매달려 구명줄을 기다리는 절대 절명의 상태였다. 떼를 쓰거나 몽니를 부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미국과 한국 등은 그에 맞는 전략과 대처 등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였다. 목숨을 구걸하는 긴급 상황의 북에 저자세로 끌려가는 꼴이 된 것이다. 북의 완전비핵화에 대한 천재일우의 기회를 스스로 유예시키는 우를 범한 것이다. 특히 미국은 이번과 같은 상업적 외교행각에서 탈피하여야 한다. 세계 최강국 및 지도국으로서의 위상에 맞는 국가상 재정립에 나서야 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북미 정상회담은 참회와 기도의 자세로 임했어야 했다. 언론 매체들부터 그러한 자세를 취했어야 했다. 찬미보다는 성찰의 장이 되도록 했어야 했다. 그래야만 북미회담은 세계 평화와 공존 및 인본의 관점에서 성사가 된 것으로 평가될 수 있고 역사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모양과 색깔이 비슷한 성조기와 인공기(6월 12일을 상징하는 양쪽 6개씩 12개) 앞에서의 양 정상의 악수가 세계사에 하나의 큰 사건 및 족적 등으로 기록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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