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송 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한희송 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이 세상에서 모든 개인 및 단체 그리고 그들이 존재하는 방법인 제도는 구상과 추상의 상호 갈등을 본질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진실을 추구하는 종교조차도 이 부분에서는 동시에 같은 시점에서 같은 의미로 합일(合一)할 수 없다. 교(敎)와 선(禪)이 깨달음의 본질을 정하는데 합의할 수 없고, 이(理)와 기(氣)가 우주의 생성원리에서 본래의 위치를 서로에게 양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묘하게도 이 두 개념이 동시에 존재할 때만 우리의 인식과 현실세계는 모습을 갖춘다. 원리 없이 작동하는 시스템은 그 어디에도 없으며 동시에 원리만 있고 시스템이 없는 상태는 유지될 수 없다. 이 때 이 두 가지 중에 어느 하나 만 잘못 된 경우에는 교정이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하나의 개념이 원리와 시스템에서 모두 본래의 존재가치로부터 이탈한 경우 그것이 사회와의 관련성이 클수록 그 사회는 존재적 고민에서 상처들을 안아야 한다.

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우리나라의 교육개혁이 가치와 시스템의 두 가지 방향에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근대화 이전의 조선의 교육은 가치 중심적이었다. 시스템의 중요성은 가치체계의 성립과 그 이행을 위해서 복종할 의무가 주어졌었다. 반면에 근현대교육은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를 바탕으로 물질의 사회적 구조를 가장 중요한 이치의 발현요소로 정의하였다. 그것은 물질적 생산성의 크기로 정신적 가치의 효용성을 측정하자는 주장에 대해 사회적 동의를 강제하였다. 물리적 시스템이 교육개혁의 주된 테제(theses)로 등장하면서 가치적 구현의 방법은 생산성 계수로 전락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역사를 통해서 근대 이전의 교육개혁과 근대 이후의 교육개혁 모두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를 얻는 이유다.

우리는 이 역사적 실수를 지금의 재산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교육으로 하여금 본래적 가치를 회복하게 하는 것이며 물리적 교육시스템이 이 개념에 복종하되 가치와 시스템의 발전적 순환을 도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교육의 가치와 추상적 측면에서의 개선이 실질적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 물리적 시스템이 지향해야 하는 바를 심도 있게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교육개혁의 장에서 물리적 체계에서의 개혁은 교과과정의 탄력성과 교사교육의 탄력성 개선이 선두과제가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진도를 구체적 수준까지 정하고 시수(時數)를 이에 연동시켜 놓으면 교육은 본질을 잃는다. 진도를 물리적으로 구체화함으로써 교육공급의 평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교사의 합리적 차이에서 오는 불평등과 교육수요자들의 생활형편이나 거주 지역의 차이에서 생기는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형식적 불평등을 해소하려고 형식적 균일화를 극대화하면 교사와 학생들의 개인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한 이해과정은 극소화된 효율성을 갖는다. 학문과 교육 분야는 그 무엇보다 다양하고 서로 견줄 수 없는 기능을 가진 소기관(小器官)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에 똑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개인의 호기심과 이해의 방향 및 크기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특징에서 공통점을 가질 뿐 각각의 존재적 가치와 인식의 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공통점은 없다. 따라서 교육을 대상으로 그 시행방법과 평가방법의 기준을 고정하려하면 모든 인간을 형식적 교육시스템으로 동일화 할 수 있다는 불가능한 전제를 허용해야 한다.

당장 힘들다고 하더라도 결국 교사와 학생의 존재가치를 믿고 그들이 인격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해야 교육개혁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교육절차상의 평등은 형식적 교육을 장려하게 하며 기능적 방법만을 평가수단으로 삼게 한다. 같은 조건에서 같은 스승에게 같은 시간동안 배우더라도 개개인의 특성상 그 학문의 깊이와 깨달음의 정도는 달라야 교육이다. 그런데 같은 시험을 같은 방법으로 풀어서 모두 100점이란 점수를 맞을 때 가장 효능이 있는 교육이란 것을 근본적으로 전제로 한 현재의 시스템은 절차적으로 달성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학습진도와 시수가 교사와 학생들의 이해와 인격적 측면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적어도 교사들로 하여금 이를 시도할 여유라도 주어야 한다. 교육시행의 절차적 측면에서 우선적으로 연구되어야 과제가 바로 이것이어야 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