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 희 팔 논설위원 / 소설가

“할아버지, 저건 뭐예요?” “어, 저것 글겅이라는 겨.” “글겅이?” “그려, 그것두 처음 보지. 옛날 물건여.” “긍께 그게 뭐냐구요?” 서울서 연휴에 제 엄마아빠 따라 내려온 막내손자 놈이 보이는 것마다 물어댄다. “그것 말이다 무슨 물건이냐 하믄, 옛날에 소의 털을 빗겨주는 빗이야 빗.” “소털은 쇠로 된 빗으로 빗겨줘야 돼?” “그래, 소의 털은 사람머리털보다 억세서 쇠로 만든 것이어야 돼. 그도 그렇지만 저것으루 소의 등허리나 배에 있는 털을 빗어주면 등허리나 배를 긁어주는 효꽈도 있어서 아주 시원해 하지. 그래서 ‘긁어주는 것’이라고 해서 ‘글겅이’라고 하는 거야.” “아하, 그렇구나 그래서 글겅이라구 그러는 거구나!”

그때 제 아빠 따라갔던 큰손자애가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호들갑을 떤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우리 이만큼 잡았어요. 봐요, 봐요!” 종다래끼를 보여주는데 팔딱팔딱 뛰는 새우가 두어 사발은 되어 보인다. “아유 생이를 많이도 잡았네.” “생이요? 아빠는 새뱅이라고 그러던데?” “그래 우리 시골에서는 서울서 말하는 ‘새우’를 ‘새뱅이’라고 하는데 이 할아버지 같이 옛날 사람들은 흔히 ‘생이’라고도 하고.” 그때 할머니가 이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는 방문을 열고 나오면서, “아이고 영감이야말루 ‘생이 벼락 맞던 이야기’를 하고 있구먼유.”하며 푸시시 웃는다. “할머니, 건 또 무슨 말이에요?” 큰놈이 의아해 한다. “어, 그런 말이 있다. 할아버지한테 물어보렴.” 이에 애 아빠가 나선다. “어, 그건 말이다. 할아버지가 지금 아이들 데리고, ‘쓸데없는 잔소리를 즐겁게 하고 있다’는 걸 핀잔하시는 말씀이야.” “그래, 그런 뜻도 있다마는 할머니가 설마 이 할아버지한테 그런 뜻으로야 말하겠느냐. ‘까맣게 잊어버린 옛일을 새삼스럽게 이야기 한다’는 뜻도 있으니 아마 그 말일 게다.” 이에 부엌에서 앞치마에 손을 씻으며 나오는 애들 엄마가 참견한다. “맞아요 그건 아버님 말씀이 맞아요. ‘새우가 벼락을 맞던 이야기’라니요. ‘호랑이 담배 피우던 때’ 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까맣게 멀어 잊어버린 옛일을 지금 왜 하시느냐는 뜻일 거예요.” 이에. “어때 임자, 에미 말이 맞지. 근 그렇고 저수지 골짜기에 가서 이렇게 많이 새뱅이를 긁어온 게야?” “예, 헛간에 걸려 있는 글겅이로 얘하고 둘이 잡은 거예요.” 글겅이라는 말에 막내손자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할아버지, 글겅이루 잡었대요.” “어, 그건 말이다. 글겅이라는 건 ’물고기를 잡는 도구를 말하기도 한다. 싸리가지로 엮어서 요새 그물처럼 만든 거야. 물고기가 많이 있는 데에서 ‘긁어모으는 것’이라고 해서 옛사람들은 ‘글겅이’라고 했지. 이 할아버지도 너나 네 엉아나 네 애비만 할 땐 글겅이로 내에 가서 또래 친구들하고 물고기를 많이도 잡았단다.”

이러는데 윗집할머니가 마당으로 들어선다. “앞집에 글겅이할매 또 양철통 들고 와 있수. 이번엔 경기도 하남엔가 사는 둘째아들하구 같이 말이우,” 그리곤 입술을 샐쭉한다.

글겅이할매는 동네서 제일 큰 집에 산다. 옛날 고가의 위풍만큼이나 지난날엔 땅 많고 세도 부리는 소위 양반네였다. 하여 동네 집집이 그네의 그늘에 살았다. 그러니 그 집 식구들은 애나 어른이나 동네사람들을 하대하는 데 길들어 있었다. 이 집은 옛날에 어땠는지 모르지만 당시 벼슬아치 양반네들은 백성들의 재물을 긁어 들이는 데 이골이 나 있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긁어 들이는 사람’이라고 해서 ‘글겅이’라고 했다지 않는가. 그런데 옛날도 아닌 지금, 지난시절의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어서인지 이 집 두 양주는 동네집이 내 집인 양, 동네사람들이 내 아랫사람인 양 수시로 드나들고 하대한다. 그도 그러하지만 살림도 넉넉하고 자식들도 도회지 나가 이름 있는 회사에도 다녀서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데 그 집 할매는 꼭 자식들을 번갈아 하나씩 앞세워서, “이 집 된장이 참 맛있던데 이 통에 좀 담아줘!” “이 집 김장김치 아직 있지 참 맛있더라. 이 통에 좀 채워줘!” 하고는 이집 저집에서 얻은 것들을 자식들 승용차에 실려 보낸다. 동네사람들이 뭐 넉넉해서인가 지난 그늘정 땜에 냉대하진 못하지만 속들은 있어서, 이 할매를 ‘긁어가는 할매’라고 하여 ‘글겅이할매’ 라 별호를 붙인 것이다.

윗집할머니의 볼멘소리와 ‘글겅이할매’ 라는 말에 막내손자가 의아해하며 할아버지를 연신 쳐다보고 있는데. 할아버진 이 좋지 않은 내용이며 별호를 차마 말로 어떻게 설명해줄까 로 그저 “그게 말이다…. 그게 말이다….” 만 되풀이할 뿐 주저주저하고만 있다. 그럴수록 막내손자의 동그란 눈동자는 계속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머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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