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시인

지난 25일 6·25기념행사가 있었다. 전쟁발발 68주년, 정전협정65주년이다. ‘사변동이’가 공식적으로 ‘노인’의 반열에 들어서게 되는 긴 세월이다.

지난 4.27판문점선언의 후속조치로 남북이산가족상봉이 추진되고 있다. 두 달 후면 만나게 될 남북이산가족 예비후보자가 1차로 500명이 선정됐다.



선정방식은 무작위 컴퓨터 추점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물론 90세 이상 고령자와 직계 가족을 두고 온 신청자들에게 우선순위를 부여했다고는 하지만, 이산가족 5만7천 명 중에서 500명이라니 턱없이 부족하다. 500명이 다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컴퓨터가 기분 내키는 대로 추려 낸 후보자가 일단 500명이라는 얘기다. 이 중 남북양측에서 본인의사와 건강상태, 가족의 생사여부 등을 확인해서 최종적으로 선정된 100명의 명단만 북측에 통보된다. 경쟁률이 무려 570대 1이나 되는 셈이다.

삼신할머니도 아닌 컴퓨터에게 “비나이다.”를 외쳐야 할 판이니 ‘이산(離散)’의 아픔이 ‘상봉(相逢)’의 확률게임에 의해서 또 한 번 상처를 받아야 하는 모양새다.



이번 이산가족상봉 뉴스를 접하면서 얼마 전에 타계한 지인이 생각난다.

“언감생심 통일은 바랄 수도 없지만, 내 생전에 왕래나 좀 해봤으면 좋겠어.

2000년 11월인가, 평양 가서 형님은 얼굴이라도 한번 봤으니 됐고, 죽기 전에 어머니 산소에 가서 술 한 잔 올리고 싶은 거 밖에, 뭘 더 바래.”

이북이 고향인 그가 생전에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지금의 해빙무드를 감안하면, 70대 중반의 나이로 생을 마친 그가 생전에 그토록 바랐던 희망사항은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 5만7천명의 평균나이가 83세요, 전체 63%가 80세 이상 이라하니, 1년에 100명씩이면 컴퓨터로나 계산이 가능 한 570년이란 세월이다.

21세기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일 치고는 너무 혹독하고 잔인하다는 생각이다.



이산가족 1세대들이 갈망과 체념의 사이를 넘나들면서 보냈을 수많은 고통의 시간과, 아픈 상처를 덮으며 흘렀을 뜨거운 눈물이 이제 겨우 ‘한반도의 봄’을 불러왔지만, 정작 그들에게는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만한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지금이라도 서둘러 상시적이고 항구적인 해결책을 찾아봐야 하는 이유다.

근본적 해결책은 요원하다 해도 우선 먼저 해야 할 일이 생사확인이다. 그다음에 서신교환이나 화상상봉을 통해 최소한의 갈증이라도 해소하고, 상설 만남의 장소를 마련해 대면상봉을 활성화시키고 더 나아가서 고향방문, 공동성묘로 발전하는 로드맵이 설득력을 갖는다.



통일문예백일장 심사를 통해 전후 3세대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이산가족에 대한 생각을 접해볼 기회가 있었다.

통일문제의 단골의제로 등장하는 ‘이산가족의 아픔’이라는 거대 담론을 몇 줄 글로서 표현한다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2,3세대를 건너 뛴 어린 학생들의 눈으로 혈육이 헤어지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인지, 생사도 모른 채 지내는 세월이 얼마나 절절한 아픔인지 알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안보현장 견학을 하고 난 감상, 인터넷상을 떠도는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천연자원, 남한의 자본력과 기술이 결합되면 천문학적인 통일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는 논지의 글이 주를 이루고 있다.

분단으로 인한 문화의 단절, 이산가족의 아픔이 그 뒤를 잇지만 단순정보전달에 지나지 않는다. 통일미래 세대를 이어주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소통과 만남’이다.

오는 8월 20일~26일 금강산에서 만나게 될 이산가족상봉자 100명을 가려내야 하는 컴퓨터의 생각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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