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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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그 허그 허그...선수끼리, 감독과, 코치와 그리고 스탭과 마주치기만 하면 서로 끌어안고 포옹하고 등을 두드린다. 구장에 남아서 손을 흔들어주는 한국팬들에게 인사하고 또 인사하고 손을 흔든다. 그리고 다시 허그 세레모니가 이어진다. 눈물이 난다. 보고 또 봐도 좋다. 이제 우리는 이런 장면을 다시 4년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승리를 맘껏 자축해도 좋다. 김영권 선수가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하는 장면도 보기 좋고, 거미손 조현우가 국민에게 고맙다며 인사하는 장면도 기분 좋다. 비록 16강에는 진출하지 못하지만,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를 너무도 통쾌하게 마무리해서 우리는 다시 축구를 사랑하며 4년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스웨덴전과 멕시코전이 열릴 때도 이런 감동을 느끼고 싶어서 밤이면 러시아에서 날아오는 낭보를 눈으로 확인코자 TV앞을 떠나지 못했다. 아직도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신선했던 경기를 기억하며 신명나는 응원전을 펼치고 싶었던 국민들은 멕시코 전을 보며 아쉬웠고 안타까워서 탄식을 했다. 그리고 스웨덴전에 이르러 비로소 숨을 쉬었다. 손흥민이 보여준 원더골 덕분이었다.

회상할 때마다 감동적인 2002년 월드컵때 한국은 얼마나 대단했던가. 펄펄 날던 선수들과 붉은악마의 신명나던 응원전. 유럽에서도 몽골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한국인을 만나면 엄지를 치켜들며 “대~한민국”을 외쳐주었으니까. 사람들은 당시 한국의 4강 진출을 기적이라고 했다. 기적은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이변 같은 일이 생겼을 때를 말한다. 그런데 정말 기적이었을까. 월드컵 진출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냈던 2002년 월드컵을 놓고 수많은 곳에서 분석을 했다.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의 호흡과 노력으로 실력이 향상됐다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런데 27일 독일전에서 2대0으로 이긴 것을 두고도 사람들은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럴 수 있다. 피파 랭킹 1위인 독일을 무참하게 무너뜨리며 그들까지 월드컵 16강 진출을 막아버렸으니까 축구 강호국들이 한국을 두려워 하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온 것도 참으로 장하고 장하다. 이 작은 나라가 수많은 경기들을 거치고 거쳐서 상처를 입으면서 이기고 이겨서 올라온 것이니, 얼마나 대단한 일이며 영광스러운 일이랴. 이제 남은 월드컵기간동안 우리는 느긋하게 강호들의 디테일한 경기 모습과 신나는 골인장면을 보며 한여름 더위를 식힐 것이다. 그리고 다시 4년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경기 중의 신나는 장면들을 잊지 못하고 뒷담화를 즐길 것이다.

뒷담화는 일반적으로 남을 헐뜯거나 꾸며서 뒤에서 하는 대화를 말하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은 ‘뒷담화’를 통해서 서로 협력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적 협력은 생존과 번식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것. 인간의 언어가 진화한 것은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악의적이거나 마타도어 식의 ‘아니면 말고’식의 뒷담화는 비겁한 짓거리지만, 후일담으로 즐기는 뒷담화는 동질감을 느끼게 하며 친밀감과 즐거움을 준다.

이번 월드컵에서 즐기는 최고의 뒷담화는 역시 손흥민의 원더골과 독일전일 것이다. 이런 뒷담화를 즐기다보면 경기에서 진 섭섭함을 충분히 만회해주고도 남으리라.

스웨덴전에서 손흥민이 슛을 날렸을 때 각국 방송들은 최고의 찬사들을 보냈다. △(러시아) 로스토프에서 한여름밤의 꿈이 펼쳐졌습니다. △(브라질) 준비 슛! 그리고 골! 골들어갈 때 음악을 틀어주세요. △(미국-라틴아메리카)오 멋진 골! 어마어마한 슈팅이었습니다. △(스웨덴) 와 어디서 이렇게 멋진 골이 왔나요! 이제 이런 뒷담화를 즐기자. 힘내라. 대한민국 축구선수들, 우리는 그대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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