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중부지방 카리브해를 낀 뜨리니다드 쁘라야 앙꼰. 무늬만 올 인크루시브인 호텔의 서비스는 나홀로 여행자에겐 지옥 체험이나 마찬가지다.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쿠바에서 손꼽히는 관광지 뜨리니다드, 전용 해수욕장까지 갖췄다는 호텔 올 인크루시브 서비스가 궁금했다. 수준 높은 캐나다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는 말에 혹했고, 싼 값에 받는 무제한의 서비스에 끌렸다. 합승 택시 불러 달라 부탁한 뒤 관광사에 전화를 걸어 호텔 예약을 마쳤다. 까사 주인에게 쿠바 뚜르 주소와 전화번호를 보여주며 여행사 찾아가는 길을 물었다. 창밖으로 손가락을 내민 그녀가 한참 동안 설명해 주었지만 미로 같은 아바나 골목을 지나쳐 여행사 찾아내는 건 쉽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노려보는 경찰에게 물었지만 길을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라곤 없었다. 서너 번 시행착오를 거쳐 가까스로 여행사가 입주한 상공회의소를 찾아냈고, 그게 늘 다니던 광장 곁에 있었다는 게 어이없었다. 건물에 들어선 뒤 사무실을 찾는데도 한참이나 걸렸다. 담당을 만나 예약 내용을 확인하고 돈을 건넨 뒤 바우처를 받았지만 머릿속엔 앙꼰 해변 올 인크루시브란 단어만 뱅뱅 맴돌았고, 포함 안 된 서비스에는 어떤 게 있을까 싶어 온 몸이 근질거렸다.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한 택시는 여섯 시간 달려 뜨리니다드 시내로 접어들었다. 움푹 팬 도로에 깔린 울퉁불퉁한 몽돌 때문에 택시는 살사 춤을 췄고, 그 무렵 기사가 두 박자 노래를 틀고 볼륨을 높인 까닭을 알 것 같았다. 곧이어 바다 풍광이 좌우로 시원하게 펼쳐진 도로로 접어들었다. 토끼 꼬리 모양으로 난 도로에서 바라보니 해 저무는 카리브해가 불타는 듯 이글거렸고, 마지막 정염을 품은 노을이 아스팔트 도로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점차 좁아지는 육지를 따라 달리던 차의 바퀴 쪽에서 빠드득 빠드득 소리가 연이어 들려온 게 바로 그때다. 도로를 자세히 살폈더니 아기 주먹 크기의 생명체가 떼 지어 꼬물거리며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길을 빼곡하게 메워가며 가로지르는 게 뭔지 물었더니 ‘쁘라’ 라는 택시 기사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들이 차바퀴에 깔려 아스팔트는 게판이었지만 살아있는 게를 짓이기지 않겠다는 택시 기사의 생명 존중 정신은 집요했다. 말로만 들었던 곡예 운전으로 해안도로를 빠져 나가는 실력은 카 레이서가 되어도 손색없을 정도다. 양쪽으로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바닷가에는 호텔 건물 몇 동이 후텁지근한 바람과 싸우고 있었다. 어깨를 으쓱하며 호텔 입구에 들어선 택시 기사가 캐리어를 내려주며 프런트 있는 곳을 가리켰다.

“저기서 체크 인 하시면 돼요.”

나는 택시 기사에게 흔쾌히 돈을 건네고 설레는 마음으로 프런트로 걸어갔다. 후텁지근한 바닷바람이 불쾌지수를 높였지만 조금 있으면 에어컨 바람을 쐬며 눈앞에 펼쳐진 환상적인 풍경을 바라볼 거란 기대감에 몰려드는 짜증을 가뿐하게 물리쳤다. 관광객 시선 끌기에 충분한 빈티지 풍의 로비였지만 선풍기가 에어컨을 대신하고 있었고, 질서 없이 둘러선 관광객들 사이로 팔을 뻗어 바우처를 내밀었다. 그걸 쳐다 볼 생각조차 하질 않는 직원은 스페인 여권을 쥔 할머니와 실랑이 하느라 바빴다. 특유의 땍땍거리는 발음으로 다투는 소리에 호텔 로비가 들썩거렸지만 둘러선 사람들은 땀을 흘리면서도 구경꾼 역할에 충실했다. 둘의 다툼은 예약한 대로 서비스를 받지 못한 것 때문이란 걸 알았고, 불안감이 슬며시 밀려들기 시작했다.

싸움은 삼십 분을 넘겨서야 겨우 마무리 지어졌다. 내 차례가 되길 기다려 여권과 바우처를 건네고 룸을 배정받았다. 손목에 팔찌 모양 올 인크루시브 표식을 걸어준 직원이 서비스에 어떤 게 포함되어 있는지 가르쳐줬지만 설명은 유난히 퉁명스럽고 빨라 알아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것만 보여주면 어떤 서비스라도 받을 수 있을 거란 묘한 설렘 때문에 들떴다.

캐리어를 끌고 배정받은 룸을 찾아가서 키를 꽂아 돌렸다. 신세계가 펼쳐질 거라 믿었던 눈에 드러난 건 낡아 빠진 현관이며 욕실 커튼, 곧 떨어질 듯 덜렁거리는 행거에 걸린 샤워기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보니 미니바는 아예 보이지 않았고, 없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는 모기와 습기만 방을 온통 점령하고 있다. 베란다 유리 너머로 호텔 전용 백사장이 보이도록 만든 것도 홀로 여행 온 사람들 약 올리려고 꾸민 듯했다. 발들이자 마자 산산이 깨진 올 인크루시브의 환상이라니. 그 뒤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며 금빛 모래만 쳐다봐도 몸서리쳐졌고, 커플들 몰려드는 속에서 고독과 사색에 잠겨야했던 탓에 소화불량에다 배탈까지 겹쳤다. 소화제를 먹었지만 체한 게 내려가지 않아 화장실 들락거리느라 뷔페의 세끼 식사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다.

캐나다, 아르헨티나, 스페인에서 온 여행자들은 앙꼰 호텔 서비스가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하지만 혼자라면 지옥이나 마찬가지란 얘길 해 준 사람은 없어 커플끼리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곳이라면 피해 다니기 바빴다. 야외 공연장 쇼를 보거나 식당과 바에서 맘껏 먹고 마실 수 있는 이점은 배탈 탓에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쁘라’의 떼죽음이며 스페인 할머니와 직원이 다투는 진귀한 광경만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습기와 모기가 점령한 객실에 빌붙어 지내며 백사장 손잡고 거니는 커플 지켜보는 동안 치솟는 열기를 고장 난 샤워기에 식히는 게 올 인크루시브의 묘미라고 가르쳐주는 듯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