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아 청주시청원구건설교통과

이상아 <청주시청원구건설교통과>

‘할머니’. 이 단어는 우리가 종종 주변에서 접할 수 있다. 도시부터 시골까지 전국 방방곡곡 음식점부터 문방구까지 다양하게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소재로 삼고 있어서 그런지 친밀감이 있다.

나는 ‘할머니’라는 단어를 들으면 6년 전에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생각난다. 친할머니는 나의 소중한 룸메이트였다. 어릴 때 나는 화장실 가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그때마다 룸메이트인 할머니를 깨워서 같이 갔었다.

“할머니, 나 화장실 가고 싶어”라고 흔들며 할머니를 깨우면, 할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일어나셨고 우리 둘은 손을 잡고 화장실을 갔었다. 화장실 안에서 볼 일을 보면서도 계속 “할머니 밖에 있지? 가면 안 돼”라는 말을 했고, 할머니는 항상 여기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시면서 기다려 주셨다. 그때는 할머니가 제일 좋았고 어디든지 할머니와 같이 가려고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입학 후 할머니와의 거리감이 생겼다.

할머니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즐거웠고 집에 있는 것보다는 학교나 친구 집에 가는 것이 더 좋았다. 특히 그땐 나만의 방을 가지고 싶었는데, 그게 이뤄질 수 없는 걸 알고 괜히 할머니를 원망했었다. 그래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고 무관심하게 대했다.

그렇게 생긴 거리감은 내가 대학교를 가면서 오히려 더 심해졌다.

나는 점점 할머니의 옛날이야기가 지겨웠고, 우리 둘 사이의 대화는 거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에게는 치매가 오고 있었다. 그래서 기억나는 예전 일들만 계속 이야기하셨던 것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할머니의 치매 증상은 더욱 심해지셨고, 심장까지 안 좋아지셔서 입원하게 되셨다.

퇴원 후 집으로 돌아오셨지만, 할머니의 대소변 등 돌봐드릴 사람이 없어서 요양원으로 가시게 됐다. 할머니가 요양원으로 가시는 게 정해진 날 난 펑펑 울었다. 그전에는 밉고 싫었던 할머니가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무척 아팠다.

이후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뵈러 간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집으로 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아쉽게도 할머니는 집에 오시지 못하고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는 할머니를 집에 모시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씀하셨고, 나 또한 죄송함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살아계실 때 잘해드렸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항상 한결같았던 할머니의 사랑을 이제야 뒤늦게 알게 됐고, 할머니가 해주셨던 옛날이야기가 너무도 그립다. 예전처럼 같은 방에 누워서 할머니의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라도 계속 듣고 싶다.

나의 소중한 룸메이트인 할머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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