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1917년) 이후 재조사, 100여 년 만에 재조사 완료

왕릉급 확인된 부던 석실 내부

(동양일보 박유화 기자) 문화재청과 부여군이 사적 14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 서고분군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왕릉급 무덤 4기와 건물지 등을 확인하는 등 고분군 내 건물의 존재 가치에 대한 학술적 성과를 거두는 등 학계에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4일 문화재청과 부여군은 “백제 사비기 왕릉급 무덤의 입지와 조성과정, 초석건물지와 주거지 등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며 “고분군 내 건물의 존재는 삼국 시대 고분군에서 확인된 바 없는 새로운 것”으로 학술적 가치로 높게 평가 했다.

‘백제왕도 핵심유적지 보존 관리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이번 발굴조사는 2016년 6월~ 2018년 6월까지 실시됐다.

이번 조사는 1917년 일제강점기 이후 100여 년 만의 발굴조사로 부여능산리 고분군 중 서고분군을 중심으로 실시됐다.

능산리 고분군은 위치애따라 중앙고분군(왕릉군) 동고분군, 서고분군으로 나눈다.

이번 확인된 서고분군 왕릉급 무덤 4기는 능선을 따라 위아래로 2기씩 배치되어 있다. 중앙 능선에 2‧3호분이, 동편 능선에 1‧4호분이 위치하고 있다. 4기 모두 지하 깊숙이 조성된 굴식돌방무덤으로 확인됐다. 무덤의 평면은 현실(玄室, 시신이 안치된 방) 중앙에 연도(烟道), 묘도(墓道)가 차례로 달려 ‘갑(甲)’자 모양의 잘 다듬은 판석(板石)으로 만들었다.

무덤 크기의 추정치는 2‧3호분 지름 20m 내외, 1‧4호분은 지름 15m 내외다. 2‧3호분과 1‧4호분은 석실의 규모, 석재의 가공 정도, 입지 등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위계 차를 반영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17년 일제강점기에 세 차례에 걸쳐 조사가 진행되어 15기의 무덤을 확인한바 있다. 이후 중앙고분군의 정비복원 과정(1965~1966년)에서 2기의 무덤이 추가로 확인됐다, 현재까지 모두 17기가 남아 있다.

이번 조사에서 2호분의 돌방 바깥 도굴구덩이에서 도금된 금송제(金松製) 목관 조각과 금동제 관못, 금제장식 등이 출토됐다. 3호분과 4호분에서는 목관에 사용된 금동제를 포함한 관고리와 관못이 확인됐다. 특히, 2호분에서 출토된 금제 장식은 길이 2.3㎝며 전체적 형태는 끝이 뾰족한 오각형을 띠고 있어 부장품의 끝 부분으로 추정된다. 유물에는 기하학적 표현의 용이 몸을 틀고 있는 형상의 문양이 발견 됐다.

이번 발굴조사에서 초석건물지 1기, 동편 능선의 1호분과 4호분 사이에서 수혈주거지 2기가 확인됐다. 확인된 건물들은 무덤 조성과 관련된 임시 거처나 제사 관련 시설일 가능성이 높아 당시 상장례 연구에도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문화재청과 군은 고분군에 분포돼 있있 무덤의 성격을 밝히는 기초 자료를 확보해 이를 바탕으로 한 고분군의 보존‧관리도 추진해나갈 방침이다.부여 박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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