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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홍가신을 생각하며
기고/ 홍가신을 생각하며
  • 홍승균
  • 승인 2018.07.05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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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균 온양문화원 이사
홍승균 온양문화원 이사

충남 아산시 현충사 옆에 황골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큰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현재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서 지형이 크게 바뀌었지만, 행정구역상 염치읍 대동리이다. 이곳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아산의 위인 만전당 홍가신의 기념관이 건립되어있고 그의 사당과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홍가신은 조선중기의 인물로 수원부사, 개성유수,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유학에 깊어서 책장을 넘기고 시문을 짓는 백면서생이었지만, 임진왜란을 겪는 과정에서 나라를 구한 공로가 평가돼 청란공신으로 책봉됐다.

선비 홍가신이 칼을 쥐고 활을 쏘는 일은, 역시 같은 시기 임진왜란 때의 일이었다. 당시 홍가신은 홍주(지금의 홍성)목사로 재임하고 있었다.

조선개국이래 200년의 평화로움은 조정을 비롯한 나라 전역에서 안일함을 초래했고, 미증유의 전란에 온 국토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에 다름 아닌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임금과 조정의 무책임한 도피와 일본군의 점령에 따라 삶의 터전이 붕괴된 백성들의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졌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민란의 봉기가 속출하게 됐다.

부여지역을 기반으로 봉기한 이몽학은 본래 왕실의 서얼출신이다. 그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아 나름의 공을 세웠으나, 이마져도 부패한 조정 관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데 크게 격분해 `부패한 나라를 뒤엎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자`며 농민군을 일으켰다.

당시 홍주는 호서지역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고, 서해의 관문이요 태안반도의 해로를 거쳐 중국을 왕래하는 요지였다. 홍주가 무너진다면 반군의 기세는 곧바로 천안과 수원을 경유해 서울로 진격할 수 있는 통로였기 때문에 인후(咽喉) 즉 조선의 목구멍과 같다고 여겨진 지역이었다.

그러나 홍주성에 상주하는 경비군사는 일백 명이 채 안되었고, 반면 나날이 불어난 이몽학의 반란군 세력은 이미 일만 명에 이르렀다.

이처럼 위급한 상황에서 목사 홍가신은 아산에서 거주하고 있는 자신의 가족들을 모두 불러들여와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였다. 그러자 민관군은 점차 안정을 찾고 인근 충청수영성과 관리들의 합심으로 결연한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 반군은 홍주성에서 대치하던 중, 속속 합류하는 지원군과 내부반란에 지리멸렬하게 됐고 결국 진압되기에 이른다.

뛰어난 목민관의 참다운 애국관과 배우고 닦은 학문에 대한 올곧은 실천으로 절체절명의 나라를 구하게 된 홍가신의 모습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깨달아야 할 바가 정말 많기만 하다.

훗날 임기를 다해 홍가신이 홍주를 떠나자 기근과 전염병이 돌게 되었는데, 마을사람들은 홍주의 진산인 백월산에 홍목사의 조각상을 만들어서 제를 올렸더니, 희한하게도 병이 낫고 농사에 안정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나랏님과 나리님들이 모두 저버린 백성들에게 홍가신은 곧 어버이였고 산신이 돼 위안을 주고 믿음을 주는 존재가 된 것이다. 현재까지도 홍성군에서는 홍가신을 추모하는 제의식을 거르지 않고 있으며, 백월산 정상에는 산신각에 조각상이 모셔있다.

살아있는 실존인물을 산신으로 모신 이례적인 사례이지만, 목민관이 지녀야 할 자세의 모범이자 학문을 하는 진정한 이유가 제시되는 만전당 홍가신의 발자취에서 깊이 성찰하여야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닐 수 없다.

홍성군에서 산신으로 모시는 홍가신이다. 아산에서도 한 집안의 가장이자, 나라로부터 부여받은 직책을 숭고히 수행한 목민관 홍가신의 뜻을 기리고 선양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후손들의 귀감이 되는데 힘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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