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 논설위원 / 중원대 교양학부 교수

이 현 수 논설위원 / 중원대 교양학부 교수
이 현 수 논설위원 / 중원대 교양학부 교수

(동양일보)도덕적 흠결이 있는 공직자에게 올바른 정책결정을 기대하긴 어렵다. 소폭이든 중폭이든 개각을 앞둔 지금, 이 명제는 더더욱 분명하다. 중국 전국시대 말기 진나라 재상 여불위의 ‘여씨춘추’에서는 인재를 등용하기 전에 검증 방안으로 ‘팔관법’이 나온다. “순조로울 때 어떤 사람을 존중하는지 보고,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을 기용하는지 보고, 부유할 때 어떤 사람을 접촉하는지 보고,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을 하는지 보고, 한가할 때 무엇을 즐겨 하는지 보고, 친해진 뒤 말속에 드러나는 뜻을 보고, 좌절했을 때 지조를 보고, 가난할 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는지 본다”라는 것이 팔관법의 주요 검증 내용이다. 나아가 ‘육험법(六驗法)’은 “그를 기쁘게 하여 정상적인 상태를 잃고 천박하게 흐르지 않는지를 살피고, 즐겁게 해서 그의 취향이나 나쁜 버릇 따위를 살피고, 화를 돋우어 통제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고, 두렵게 만들어 그것을 견딜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 슬프게 만들어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지를 살피고, 힘들게 만들어 그의 의지를 시험 한다”라고 한다. 이 정도로 등용할 인재에 대한 현미경 시험을 해본다면 반듯한 판단이 설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선인들 참으로 지혜롭다.

현대사회에서 건조하게 가공된 인재를 가려내는 것은 공직이나 민간이나 매우 지난한 일이다. 인재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다각도의 검증 절차도 그래서 날로 진화한다. 그러나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여간해선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인사권을 지닌 이가 통찰력과 특출한 지혜를 가진 것이 아니라면 그 경계를 올바르게 가려 볼 수가 없다. 인사검증이 실패해서 언론과 야당의 반대에 직면해 낙마하는 후보자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오늘날에 ‘팔관육험법’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청와대에서 인사 검증에 참여했던 지인은 부동산과 음주 전과, 그리고 이중국적 문제를 ‘고위공직자의 세 가지 늪’이라고 표현한다. 책임을 물어 장관을 교체할 때 또는 장관 후보자가 뜻하지 않은 결격사유로 낙마했을 때, 대개 관료 출신으로 후임을 정하는 건 상대적으로 단시일 내에 검증을 끝낼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 인선의 신선함은 떨어지지만 ‘고위공직자의 세 가지 늪’에 빠져 결격사유가 될 만 한 문제는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에 재산 등록 서류를 비롯한 인사자료가 시기마다 축척돼 있고, 장·차관을 희망하는 공직자들은 자기 관리가 기본이기 때문이다. 반면, 교수의 기용은 인사 전체에 전문성과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만 검증 측면에선 위험부담이 크다고 한다. 특히 유학을 한 이들 중에는 자녀들의 이중국적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으며 여기에 더해져 십여 년 전부터는 논문 표절이 새로운 검증 기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교수 사회 전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엄격한 검증을 통과한 다수의 교수들이 고위공직에 있지 않은가.

정권교체기마다 장관에 거론되는 어느 지인은 언론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발가벗겨지는 수모를 당하기 싫어 공직을 늘 상 고사한다. 정책 검증이 아닌 개인의 신상 검증이 부담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고위공직자들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선 늘 도덕성 검증 관련 보도가 쏟아진다. 언론에 연일 등장하는 후보자의 내밀한 신상정보들이 두려워 공직을 기피하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과도한 인사 검증’ 보도가 그간 문제 되긴 했지만, 인사 검증 보도의 강도를 낮추는 것은 언론의 직무유기임은 물론이다.

권력 비판은 언론의 존재 이유이며, 공직자 검증 보도는 가장 중요한 기능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진보 매체든 보수 매체든, 획일적 진영 논리를 떠나 동일한 기준과 잣대를 적용해 언론 스스로 검증 보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사람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저마다의 기준이 달라서야 되겠는가.

민선 7기 출발에 즈음하여 지방자치 선출직은 임명직에 비해 검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선출된 자치단체의 공직자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지속적인 정책 검증도 언론의 책무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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