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비시 키요시(金菱 淸) 토호쿠가쿠인대학(東北學院大學 교수)



동일본 대지진에서 보고 느낀 죽음과 그 이후

카네비시 키요시(金菱 淸) 토호쿠가쿠인대학(東北學院大學 교수)



●인간 존재를 흔든다

갑작스러운 재해로 ‘안녕’도 전하지 못하고 떠나버린 부재자(不在者)들. 거기에는 도저히 납득의 안 가는 사람들이 있다. 쓰나미로 부모를 잃은 여성은 생가의 기둥에 이와 같이 난필을 한다. ‘엄마, 아빠, 딱 한 번만으로도 좋으니까 다시 보고 싶어요. 외로워요. 괴로워요’ 유령이 난다고 소문난 곳을 밤마다 찾아다니고 아직 이룰 수 없는 만남을 고대하고 있다. 가령 제삼자적 입장에서 죽음의 사실을 전해봤자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다.

나는 한 사람의 과학자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적 존재, 나아가서는 영적 인간으로서 재해라는 것과 맞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보면 대단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내심은 패배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회학자 시미즈 이쿠타로(淸水幾太郞)는 과거에 관동대지진을 당하면서 “지진에는 무언가 (다른 재해와) 이질적인 것이 있고, 대지가 땅속 깊은 데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면 인간 존재도 깊은 밑바닥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 같이 여겨졌습니다.” 라고 말한 바 있다. 화재나 태풍, 홍수에서는 그것을 피해서 안정된 대지 위에 설 수 있지만, 지진에서는 그 마지막 근거이어야 될 대지마저 배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이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도 역시 동일본대지진으로 5분 이상 멈추지 않는 열진(진도7)에 노출되었을 때, 전혀 살아 있는 것 같이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대지진 후 딱딱한 이론적인 책을 읽으려고 해도 전혀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은 이른바 안정적인 마지막 근거가 되어야 될 대지가 흔들림으로써 내일이 오는 것조차 굳게 믿지 못한 인간 존재 자체가 흔들린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날려버리는 껍데기만의 이론과 연구와 작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진이란 ‘후미에’(踏み絵·원래는 에도시대 일본에서 관리들이 백성들에게 밟게 하고 숨은 천주교인을 색출하는 데에 사용된 그리스도 혹은 성모자를 세긴 동판 혹은 목판을 가리킨다. 여기서 개인의 사상 ・ 신조를 묻고 판별하는 일 혹은 사물을 의미한다.)인 것이다. 나 자신이 인간 존재를 깊은 곳으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을 때, “그런데도 너는 더 무엇을 계속 물을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받은 느낌이었다. “만약 그것에 대답할 수 있다면 그것을 진짜 연구라고 부르자. 그렇지 못하면 그것은 우아한 취미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해진 것과 같은 사건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죽음의 통지는 당사자에게 아무런 의미도 변경시키지 않는다. 사람들이 본인의 마음속에서 생물학적인 죽음과 다른 무언가를 감지했다는 사실을 직시하거나 그것과 맞추어야 했던 것이다. 나는 이번 대지진 이전까지와 다른 지극히 원초적인 종교관과 대면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가진다.

사자(死者)가 죽은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7년이 지난 후에도 어느 행방불명자의 가족이 1%의 생존 가능성을 믿고 살고 있다. 이 사실을 몇 사람이나 제대로 직시하고 있는가? 99%의 확정된 사항을 가지고서는 이 1%의 가능성이 결코 유린(蹂躪)되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자로서 어떻게 거론할 수 있을지 지금까지 계속 생각해 왔다.

마치 살아 있는 듯 행동하고, 그리고 스스로 ‘납득이 가는’ 방식으로 사자를 내보내는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는 것에 눈을 돌리는 중요함을 배우게 된 것이다. 이것은 제도적인 종교적 의례와는 반대 극에 있다. 육체적인 소멸에 따라서 사자를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이 세상에 머무르다가 시간적 유예(猶豫)를 두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중시하는 모습이다.



●사자에의 위화감



동일본대지진으로 직면한 큰 과제는 아마 사람은 죽으면 어디에 가느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죽음의 기점이 분명하지 않다. 행방불명이라는 문제는 이것을 여실히 말해준다. 포린 보스(Pauline Boss)가 제창한 ‘애매한 상실’이라는 말은 행방불명자의 유족에게는 유해가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의 실감이 안 난다는 느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유해가 있고 장례식을 지르고 매장 등을 거친 ‘명확한 상실’과 비교하면 생자라고도 사자라고도 할 수 없는 보류상태의 죽음이다. 그 의미에서는 “안녕”이 없는 이별이다.

내가 이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모종의 위화감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아직 동일본대지진의 큰 쓰나미를 당하고 건물 잔해가 아직 치워지지 않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필사적으로 사체안치소나 바다 속에서 찾아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눈이 계속 내리는 가운데 종파를 막론하고 기독교도 불교도 일종의 치밀한 연계를 하면서 죽은 사람에게 묵도를 올리고 합장하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별로 의식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것이 강렬한 위화감으로 남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같은 대상에 대해 사자를 추도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종교는 사자로서 위령하고 있는 한편, 사랑하는 가족을 찾고 있는 사람들은 생자로서 완전히 달리 보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7주기가 끝나고 올해는 그때부터 7년째를 맞이했다. 내가 현장에서 계속 사귀다 보면 가족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게 된다. 부모가 시키니까 형식적으로 손을 모으고 있으나 죽음의 실감이 별로 없고, 묘는 만들었으나 거기에는 유골도 없으며, 사망신고를 내긴 했으나 확인할 길도 없다고 한다.



●유령에게 상냥한 택시 드라이버



본래는 애매한 것을 해소하는 에너지가 종교적인 힘의 원천이었겠지만, 그것은 한정되어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런 방향으로가 아니라 애매한 것을 애매한대로 처리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

생자인지 사자인지 단정할 수 없는 보류 상태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즉 그것은 생자의 위기임과 동시에 혼이 된 사자에도 위기이다. 2중의 불안정함을 안고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각에서 택시 운전수가 본 유령 현상의 예를 살펴보자.

“대지진부터 3개월 정도 후였던가? 기록을 보면 확실하지만 초여름이었어요. 어느 늦은 밤에 이시노마키역(石卷驛) 근처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겨울 같은 말랑말랑한 코트를 입은 여자가 태웠지” 그녀는 30대 정도로 초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모피가 달린 코트를 입고 있었다고 한다. 목적지를 묻자 “미나미하마(南濱)까지요”라고 대답했다. 이상하다 싶어서 “거기는 이제 거의 (쓰나미로 인해) 빈터인데 괜찮으세요? 무슨 일로 미나미하마까지 가시나요? 코트는 덥지 않으세요?”라고 운전수가 물었더니 “나는 죽은 거예요?”라고 떨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서 놀란 운전수가 “예에?”라고 하면서 밀러로 뒷좌석을 확인해보니까 거기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또 다른 운전수는 어느 늦은 밤에 순회했을 때 한여름에도 불구하고 한겨울 자림을 한 초등학교 아동만한 여자 아이를 보았다. 이상하게 여겨 “애야, 엄마랑 아빠는 어디야?”라고 물자 “나 혼자예요.” 라고 아이가 대답했다. 미아인 줄로 알고 집까지 보내주려고 집 장소를 묻고 답한 대로 그 근처까지 데려다주자, “기사아저씨 고마워요.” 라고 인사하면서 택시를 내린 그 순간 여자 아이가 사라지고 말았다.

평상시 같으면 유령은 두려움의 대상이기 때문에 오하라이(나무 막대기에 흰 종이를 묶어서 만든 도구인 오오누사를 대상을 향해 흔들고 나쁜 기운이나 더러움, 귀신을 내쫓는 신도의 의례.)를 받거나 손을 모아 극락왕생하기를 빌 판이다. 그러나 유령과 기이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 어느 운전수도 극락에 보내고 싶어 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만나게 되면 다음에도 태워주겠다고 하듯 환영하고 있다.

소문으로 똑같은 체험을 들었지만 “지금은 엄마와 아빠를 만나러 왔다고 생각해. 나만의 비밀이야”라고 말하는 그 표정은 어딘가 슬프고, 그러면서도 분명히 기쁘게 보였다. (幽霊が通う街 『呼び覚まされる霊性の震災学』, 新曜社).

왜 유령과의 접촉을 기피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남에게 뽐내거나 발설하려 하지도 않는다. 동료와 가족에조차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 가슴속에서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와 같은 사건은 보통이면 세상이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유령(사자)에 대한 경외심이 그들을 지탱하고 있다. 통상적인 처리 방식으로 말하면 장례식이나 위령제와 같은 종교적 의례가 있다. 이것들은 피안 편에 서서 혼을 진정시키는 처리방식이다.

그러나 행방불명자가 많이 나오게 된 대지진에서는 아직 피안에 있지 않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통상적인 대처 방식이 적합하지 않다는 면도 있다. 행방불명에서는 죽었을지 살아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태가 장기간 계속된다. 생자와 사자의 사이를 잇는 애매한 (중간)영역에 있는 불안정하고 양면적인 삶/ 죽음을 무리하게 지워 없애려 하지 않고 애매한 것을 애매한대로 놓아두고 삶과 죽음의 중간영역을 풍부하게 하고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이재민인 당사자들 스스로 생각해냈음을 알게 되었다.



●임시보관의 논법



그리고 이것은 별로 특이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의 어떤 ‘일상생활의 감각’에 옮겨놓으면 알기 쉽다. 철학자 우치다 다쓰루(內田樹)에 의하면 우리는 처리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중간항이라는 방식으로 무리 없이 처리한다.

예를 들면 PC의 경우 아직 정리가 안 되지만 필요도 없는 것은 휴지통에 집어넣고 처리한다(지운다). 다 정리된 것은 저장하거나 폴더에 넣는다. 그러나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판단하기 곤란할 파일의 경우 우리는 어떻게 처리하는가? 그것은 여러분의 PC의 바탕화면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탕화면에 일시 보존된 상태로 놓아두고 있을 것이다. 이 바탕화면에 임시로 보관하는 영역을 중간항이라고 한다. 메일로 말하면 ‘기타’ 폴더나 수신함에 일단 놓아두는 지혜와 가까울지도 모른다. 이러한 중간항의 긍정에의 전화는 어떻게 해서 정신적인 치유에 기여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의 지진에서는 행방불명과 갑작스런 죽음, 쓰나미의 엄습까지의 이야기 등이 사람들의 마음의 틈새에서 자라고 있다. 그런 자리에서 외부로부터 벌써 지진에서 1년이 지났다, 혹은 이미 7년이 경과했다고 해서 빨리 사자를 잊으라고 말하는 것은 말하자면 바탕화면에 보류해 놓은 것을 외부에서 성급하게 정리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는 종교계도 그 노선에 가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 정리할지는 이재민인 유족이 결정하면 될 일이다. 말하자면 ‘당사자 주권’에 맡겨져 있는 일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에 20년 이상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다는 마음의 여유와 안심감을 택시 운전수의 이야기는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반드시 가족이 아니라도 지역이 죽은 사람을 도와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말하자면 애매한 것을 애매한 채 일시 보관하면서 미처리한 채 처리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좋은 방식으로 평가하는 중요함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이러한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결정을 내리지 않는’ 태도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해서는 빨리 처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기모순일지도 모른다.

이 과제와 설정은 피재지의 사생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카네비시 편, 2016) 소위 ‘사자’와 생자가 왕래하는 따뜻한 상호교류의 자리가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죽으면 ‘이제 그만’이 아니고 영혼을 무서워하고 저승으로 내쫓는 것도 아니라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유령과 만난 택시 운전수들은 어느 사례에도 유령이 다시 한 번 나타났다고 해도 다시 태워주겠다고 하는 따뜻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보통이면 무서우니까 손을 모아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말라고 빌었을 것이다. 제도적인 종교도 그것을 지지하는 경향에 있다. 예를 들면 장례는 사자=비일상적인 생자를 생자=일상적인 생자 측이 일상성(이승)으로부터 떼어내고 비일상적인 영역(저승)으로 이행시켜서 안정을 도모하는 행사이다. 이것에 따르면 피재지에서 목격되는 유령은 사후에 육체를 이탈한 영혼이며 아직도 저승으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이 세상에 나타나는 존재(실체)이다.

종교학자 사사키 코오칸(佐々木宏幹)은 토호쿠 지방의 유령이 안정화되고 사람들을 현혹시키지 않기 위해서도 (1)불안정하고 헤매고 있는 사자들, 시기와 원한의 감정을 품고 재앙을 주는 사자, 탈이 되는 사자, 성불 ・ 극락왕생하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사자에서 (2)진정하고 안정된 사자들, 편안한 사자, 왕생한 사자, 자손을 지켜보고 도와주는 조상으로 변화하는 것이 요구되고, 그 매개역할을 종교가 맡아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사사키, 2012).

사자를 더러움과 탈을 씻거나 제사지내거나 공양해야 할 대상으로 파악할 수도 있고 그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 제시한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례는 명확하게 그것을 부정한다. 생자와 사자의 사이에 존재하는 애매한 죽음은 꼭 부정적이지 않고 재앙을 내리는 불안정한 죽음이 아니다.

불안정하고 양의적인 삶/ 죽음의 내용을 굳이 감축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풍부하게 해서 당사자가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점은 종래의 종교관에서 설명할 수 없다.



●<조력-감사>와 <빚-보상>

이 시간적 유예는 영성(靈性), 즉 생자와 사자 사이의 세계에서 무엇을 제시하게 되었을까. 문예비평가 키야마 소이치(喜山莊一)는 이번의 사자와의 관계가 일본의 신석기시대인 죠몽(繩文)시대의 ‘자승’의 모습과 서로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사자나 저승을 재앙이나 더러움으로 보거나 공양하거나 하게 되면서 죠몽시대부터 멀리 떨어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마음의 심층에는 죠몽시대의 감각을 농후하게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키야마는 류큐호(琉球弧) 즉 오키나와(沖繩)의 타계관(他界觀)에 비추어 이번의 우리 프로젝트에서 얻어진 지견에 입각하면서 <조력-감사>를 덧붙이는 것을 제안한다. 말하자면 사자는 생자와 함께하고 도와주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사자에게 감사한다. 사자는 쫓아야 할 무언가라기보다 곁에서 지켜주고 속삭여주는 눈에 안 보이는 존재이다.

물론 <조력-감사>론은 지진 후의 사생관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모든 사자가 그렇게 착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생자를 무겁게 억누르는 존재라는 이야기는 현장에서도 자주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반론이 곧 <조력-감사>론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또 하나의 측면인<빚-보상>론이다. 생자는 저 대지진에서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하는 미안함으로 가득 찬 감정을 7년 이상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 구해줄 수 없었다는 사자에 대한 미안함이다. 사자에 대한 죄책감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평생 동안 그 빚을 갚으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보상이다. 이 죄책감을 씻어내는 것으로 빚을 갚으려 한다.

언뜻 보기에 <조력-감사>와 <빚-보상>은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자와 사자의 관계성에서 보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이기도 하다. 생자인 유족은 사자에게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갚아주는 역할을 생자가 맡는다. 즉 <조력-감사/ 빚-보상>론은 생자와 사자의 증여관계(贈與關係), 주고받는 관계로 일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말하자면 남은 사람들에게 사자가 남긴 생자에 대한 감정은 괴로우면서도 그것에 대한 보답이 삶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 증여관계로 맺어진 생자와 사자의 관계는 삶과 죽음의 분리로 인해 타계(他界)로 멀러 떨어지는 것을 거부하고 삶과 죽음의 근접공간으로써의 ‘친밀권’으로 변화시킨다.



●유령을 맞이하는 문화

종교학자 사토 히로오(佐藤弘夫)는 토호쿠 지역의 무카사리 에마(繪馬·신불에게 바치기 위해 말 등을 그린 나무판.)라는 어려서 요절한 미혼자가 신랑신부가 된 화려한 장면을 그린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부조리하게 자기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이들이 가장 빛나는 순간을 그림으로 남기고 죽은 아이가 저승에서 짝을 얻고 영원토록 지극히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다는 증거로 삼는 풍습이다. 또 토호쿠 지역에서 대지진 후에도 널리 볼 수 있고 유족들이 믿고 의지한 쿠치요세(공수) 의례나 토오노 이야기(遠野物語·이와테현(岩手縣) 토오노 지방의 민간전승을 1910년에 민속학자 야나기타 쿠니오(柳田國男)가 모아서 엮은 책.) 등에 대표되는 사자와 만날 이야기 등과 아울러 보면 유령을 받아들이는 문화적 바탕은 원래 있었던 것이다.

동일본대지진에 있어서의 택시 운전수와 승객은 원래 서로 무관한 사이이지만, 관계자를 잃은 자기의 피재 체험과도 겹치면서, “이렇게 많이 피재했으니까 유령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고, 나왔다 하더라도 그 마음은 잘 안다”라는 따뜻한 관계성이 피해 지역인 이시노마키(石卷)라는 커뮤니티 속에 빚어지고 있다. 이러한 '잘 안다'라고 하는 심정의 공유(share)가 깊은 자애에 의해 유지되어 있는 것이다.

현대적 영성을 생각할 때 특별히 새로운 영성이 나타났다기보다는 고층(古層)의 보편적인 사생관이 원래 있었고, 평상시에는 가려졌던 그것이 문득 표출되었다고도 볼 수 없을까. 그것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재해의 영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재해라는 하나의 현상에 머무르지 않고, 그리고 일본이나 한국이라는 테두리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에 징검다리를 놓는 인간존재의 차원까지 내려가서 생각할 수 있는 소지를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번역 야규 마코토(柳生眞) 원광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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