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옥희 한국교통안전공단충북본부 차장

박옥희 <한국교통안전공단충북본부 차장>

뜨거운 한낮의 햇살이 피부를 아프게 하는 본격적인 하절기를 시작하면서 올해 우리 가족도 피서지를 어디로 정할지? 장고에 들어선 여름 휴가시즌이 도래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처럼 작년 휴가시즌에 차에 사람에 치이고 바가지에 혼났던 유경험자로서 넘실대는 파도소리를 선택할지, 계곡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선택해야 할지보다는 ‘아예 비수기인 겨울철에 휴가를 즐겨야 하나’ 아니면 ‘북적되더라도 남들 다가는 여름철이 제 맛이지’라는 고민 또 고민에 쌓인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업무로 알게 된 고객으로부터 걸려온 의문의(?) 전화 한 통을 받고서야 내 마음의 번민이 사라진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이 이야기를 풀어가기 위해선 내 직업을 밝히는 게 우선일 것이다.

‘자동차사고 피해가족지원’이라는 다소 뜬금없는 일이 나의 직업이다. 자동차사고로 자동차손해배상법시행령상 1~4급에 해당하는 중증후유장애를 입은 본인의 재활보조금과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존속의 피부양보조금, 중증장애를 입은 본인이나 자동차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자녀들에게 장학금이나 무이자 생활자금대출 그리고 0세에서 18세 미만의 자녀 중 매월 일정액(10만원 한도)을 적립하면 국가에서 6만원을 매칭해서 별도 적립한 뒤 자립을 돕는 자립지원금 지원 등 일종의 복지서비스다.

다시 의문의 전화 통화내용으로 들어가면, 공단에서 아들은 재활보조금을, 노부부는 피부양보조금을 지원받는 노모의 통화였다.

40세의 아들은 장애인용 승용차를 몰고 농한기라 타 지역에 날품을 팔기 위해 외지로 나가있는 상태인데, 암투병중인 남편의 병원진료를 위해 차량이 필요하니 혹시 어렵겠지만 이번 한 번만 병원에 데려가 줄 수 없는지를 묻는 정말 고민 고민 끝에 걸려온 전화였다.

업무스케줄을 확인한 나는 마침 근방 다른 지원가족의 방문상담 예약 건을 발견하고 딱 한마디 “네, 어머니”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들리듯 말 듯한 엷은 울음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어머니 그냥 가는 길에 잠깐 들리는 거니 걱정마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수화기 너머 들리는 “고마워유” 이 말 한마디에 나 역시 아무 말도 못한 채 수화기만 들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더 이상 대화는 무의미한 존재였다. 그냥 울면서 수화기를 내려놓은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자동차사고로 심한 재해를 입은 친지나 지인은 사실 내 가까운 주변에는 없지만, 지금 내가 맡고 있는 피해가족 지원 업무만 보더라도 그 피해는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충북만 따져도 자동차사고로 사망이나 중증장애를 입어 공단에서 지원 받는 가정만 250여 가구, 640여명에 작년 한해에 지원된 금액만 9억4000만원에 이른다. 이마저도 소득금액이나 재산 상태를 고려한 생활수준이 차상위나 수급자만 해당되니 실제 자동차사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말인가.

인명은 재천이란 말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안전 불감증’이란 말이 더 어울린다. 우리의 망각과 생활습관이 더 큰 재앙을 불려오고 있는 작금의 실태가 더 무섭게 다가온다.

희망이란 어디서 나도 몰래 살며시 누군가 가져다주는 천사의 날갯짓이 아니라 피 땀나게 노력하고 갈망해야만 쟁취하는 결과물임을 우리는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한 해 교통사고 사망자 수만 4000여 명이 넘는 ‘카오스’ 시대를 지나 기초교통법규 준수와 안전한 교통문화가 만연한 ‘카타르시즘’이 도래하길 기대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