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식당 종업원에 대한 호칭,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죠? 그때 제시했던 ‘차림사’라는 말 괜찮은 것 같던데.”

저녁식사 자리에서 언어에 조예가 있는 한 시인이 예전에 필자가 쓴 칼럼을 상기시키며 건네 온 말이다. 그래서 갑자기 화제가 호칭문제로 바뀌었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도중 종업원을 부를 일이 생길 때 어떻게 불러야할까에 대해서다. 누구는 손뼉을 친다고 했고, 누구는 사장님, 누구는 아줌마, 이모, 언니, 저기요, 여기요 등등 각양각색이었다.

5년전 이 문제로 칼럼을 썼었다.

당시 한국여성민우회가 식당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설문조사를 한 끝에, ‘차림사’ 라는 이름을 만들고 호칭 보급 운동을 펼쳤지만 널리 확산이 되지 못했다. 요즘도 식당에 가면 여전히 난감해 하며, 여기요 저기요로 종업원을 부르고 그런 호칭이 불편한 식당은 아예 식탁위에 벨을 달아 놓거나, 더 발전한 곳은 종업원들이 명찰을 달아서 필요하면 이름을 부르도록 배려해주는 정도다. 한 탈북여성은 한국 정착생활 중 낯설었던 경험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식당 아르바이트 시절, 어느 손님이 ‘이모’라고 부르는 소리에 대답하지 않았다가 낭패를 당한 일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그 여성은 “제가 왜 그 손님의 이모죠?”라고 되물었다.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언어는 수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신조어도 생기고 국적불명의 외국어들이 밀려와 우리말을 제치고 외래어로 자리 잡기도 한다. 이런 마당에 부르기 좋고 제대로 된 호칭 하나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은 우리들의 관심 부족이 아닐까.

최근 이와같은 사회적 호칭과 별도로 가족 간의 호칭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올 들어 청와대 국민청원에 가족 내 불평등 호칭을 개선해달라는 주제의 청원이 십여 건 넘게 등록됐고, 가족 호칭을 바꾸자는 피켓 시위도 등장했다.

가족 내 어떤 호칭이 문제인 것일까. 지난해 국립국어원이 10~60대 국민 4000명을 대상으로 가족 내 호칭에 대해 조사한 결과, 65%가 남편의 동생을 ‘도련님’ ‘아가씨’로 높여 부르고 아내의 동생은 ‘처남’ ‘처제’로 높이지 않고 부르는 관행을 고쳐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 결혼한 여성이 남편의 집안을 가리킬 때는 ‘시댁’으로 높여 말하고 결혼한 남성이 아내의 집안을 가리킬 때는 ‘처가’라고 높이지 않는 것을 고쳐야 한다는 것 역시 60%가 됐다.

언어는 시대에 맞게 바뀐다. 이에따라 호칭도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아가씨’ ‘서방님’ ‘도련님’ 같은 호칭들은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의식 속에서 만들어진 불평등 호칭으로, 성 평등한 가정 문화를 만들기 위해 당연히 바뀌어야 하지만, 현대의 감각에도 맞지 않는 호칭으로 전면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호칭이 문제가 될 때마다 생각되는 것이 있다. 제일 좋은 것은 뭐니뭐니해도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다.

김춘수 시의 ‘꽃’처럼 누군가 ‘꽃’이라고 불러줄 때 비로소 ‘꽃’이 될 수 있듯이 ‘이름’도 누군가 불러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이름이 되기 때문이다. 이름은 스스로 부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이 불러주라고 지은 것이다. 사람이 일평생 살면서 이름을 많이 불린다면 그보다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이름을 부를 때 예의를 갖추려면 ‘씨’자만 붙이면 된다. 여성에게나, 남성에게나 젊은 사람에게나 동료에게나 ‘씨’는 공통의 경칭이 된다. 그리고 좀더 높이려면 ‘님’을 붙이면 된다.

대통령도 과거처럼 ‘각하’로 부르지 않고, ‘님’을 붙이면 금방 친근하게 느껴지는 대통령님이 되듯, 모든 사람들을 ‘님’하나로 가깝고 친절하게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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