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태 교수 "고려 아닌 신라 통일기 제작"
한국목간학회 워크숍서 반박

청주 운천동 사적비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청주 운천동 우물터에서 1982년 3월 발견된 '운천동 사적비'(雲泉洞寺蹟碑·충북유형문화재 134호) 제작 시기를 두고 학계에서 논쟁이 재점화 됐다.

운천동 사적비는 '합삼한이광지'(合三韓而廣地)와 '수공이년병술'(壽拱二年丙戌)이라는 구절을 근거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인 686년 수도 경주와 먼 청주 지역에도 삼한일통(三韓一統·신라, 고구려, 백제는 하나) 의식이 퍼졌음을 알려주는 사료로 활용됐다. '수공'은 당나라 측천무후 연호인 수공(垂拱)과 발음이 같고, 이 연호에 따르면 수공 2년은 686년이다.

사적비는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그 일부만 남아 있다. 현존 비석은 길이 95㎝, 폭 92∼93㎝, 두께 18㎝로 삼면에 새긴 글자 중 약 160자가 판독된 상태다.

윤경진 경상대 교수는 2013년 발표한 논문에서 비석에 남은 문자 가운데 '천인아간'(天仁阿干)과 '사해'(四海)라는 표현을 근거로 들어 설명했다.

천인아간은 신라 말기에 사용한 표현이고, 사해라는 말은 중국 황제가 천하를 거론할 때 쓰는 용어로 7세기 후반 당에 사대를 취한 신라가 쓸 수 없었다는 점에서 비석 제작 시기는 신라 중기(7세기 말)가 아닌 이보다 200여년 늦은 나말여초라고 주장했다.

최근 이 주장에 대한 반박이 다시 제시됐다.

윤선태 동국대 교수는 최근 열린 한국목간학회 워크숍에서 운천동 사적비가 건립된 시점은 고려가 아닌 신라 통일기라고 재반박했다.

윤선태 교수는 '나말여초 제작설 근거 중 사해 같은 비문 내용은 비석 자체가 온전하지 않다는 점에서 명징하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며 '최근에 운천동 사적비 서체가 남북조(420∼589) 해서(楷書·정자체)라는 점에서 나말여초 유물이 될 수 없다는 견해가 제시됐는데 이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윤선태 교수는 '아간'이라는 표기 방식은 매우 의미 있는 문제 제기였다고 인정했다.

윤경진 교수가 나말여초 제작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세운 근거 중 '아간'에 대해 윤선태 교수는 금석학자인 임창순씨가 과거 '1행 '아간' 등의 자형은 2행인 주성대왕(主聖大王) 이하 글자보다 현저히 작으므로 그 내용이 연속되는 문장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된다'고 했던 지적에 주목했다.

윤선태 교수는 ''아간' 표기가 있는 측면의 1행은 글자 획이 2행보다 좁고 얕아서 두 행을 동일한 사람이 새겼다고 볼 수 없다'며 '청주 호족이었던 '아간'들이 지역 권력으로 성장해 후대에 자신의 이름을 추가로 새긴 것으로 추론되므로 이것이 나말여초 제작설을 뒷받침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장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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