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기 한국교통대 교수

 

남자가 여자에게 가르치듯 설명하는 것을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 한다. 2010년 뉴욕타임즈의 올해의 단어로도 선정된 바 있는 이 단어가 우리나라에서 새삼스럽게 주목받은 이유는 평양냉면 열풍 때문이었다. 보통의 경우 그저 음식을 맛있다 맛없다로 가볍게 평가하면 그만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일부 음식에 대해서는 맛을 느끼기보다는 맛을 분석하고 음식의 정통성과 관계된 제반 지식을 인지해야만 제대로 그 음식을 안다는 자부심 논란으로 확대되었다. 포도주에서 시작된 머리로 먹는 음식 열풍은 커피를 거쳐 급기야는 ‘평냉’ 즉 평양냉면에 이르게 되었다. 평양냉면에 대한 지식을 과시하는 태도를 ‘면스플레인’이라 하는데 이는 맨스플레인을 패러디한 단어이다. 면스플레인으로 대표되는 음식에 대한 정보의 홍수는 음식을 먹을 때 오감에서 전해져 오는 감각 조차도 우리의 머리에 쉽게 인지되어 있는 지식으로 치환하게 된다. 다시말해 냉면을 먹는 사람들 스스로가 맛에 대해 개별화된 의견을 갖기보다는 소위 전문가들로부터 얻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장 각인이 된 정보만을 가지고 맛을 평가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인지 유창성(cognitive fluency)이란 사람이 무엇인가를 처리하려고 할 때 정신적으로 지각적으로 쉽게 처리하려는 경향을 일컫는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의 용어 중 하나이다. 전통적 혹은 보수적인 경제학에서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완벽한 이성적인 존재라고 가정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인간은 이성의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그 중에서 인지 유창성은 인간이 핵심적인 정보보다는 더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정보를 선호하고 확신하는 성향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평양냉면의 원형을 먹어본 사람들이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 면스플레너들의 설명에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는 그들이 제공한 정보 중에서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정보에 의해 평양냉면을 판단하게 된다. 사람의 뇌는 뇌의 활동에 따른 에너지를 최소화하도록 진화되었기 때문에 외부의 도움을 받아들임으로써 의사결정을 위한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과도한 외부로부터의 정보 중에서 자신이 익숙하거나 쉽게 이해되는 정보만을 갖고 자신이 전문가처럼 다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인지 유창성을 가장 잘 활용하는 분야가 브랜드 마케팅이다. 사람들은 제품을 선택할 때 제품에 따른 상세한 기능을 꼼꼼히 점검하기보다는 가장 익숙하고 신뢰하는 브랜드를 가진 제품을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브랜드에 따른 높은 충성도 만큼 소비자가 해당 브랜드 제품을 제대로 인지하고 사용하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이다. 사람들의 게으른 인지 행위인 인지 유창성은 브랜드를 무기로 한 제품 홍보에는 유용할지 모르나 복잡한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가령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디젤 자동차 운행에 따른 환경 오염만 보더라도 인지 유창성의 문제점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디젤 자동차가 클린 디젤이란 이름으로 가솔린에 비해 적은 온실가스 배출, 높은 에너지 효율로 인해 친환경적인 운행수단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져 왔다. 클린 디젤을 말하던 시절에는 디젤 기관에 의한 미세먼지 오염은 머지않아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디젤 자동차는 미세먼지 오염의 주범으로 전락했고 더 이상 운행하면 안되는 차량이 되어버렸다. 고유가 시절에는 디젤기관의 고효율만 보였다면 국제 유가가 다소 안정기에 접어든 지금에는 디젤로 인한 미세먼지만 부각될 수 있겠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그간 디젤기관으로 인한 대기 오염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우리 사회가 단편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교육 특히 대입과 관련되어서는 인지 유창성에 따른 부작용이 더 심각하다. 지금의 입시문제가 단지 자사고만의 문제인지, 수시 전형의 객관성 문제인지 아니면 수능시험만이 입시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수단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입장에만 매몰되어 믿고 싶은 것만을 진실로 간주한다면 복잡한 우리의 대입 문제를 해결하기는 요원할 것이다.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예선 탈락한 것이 특정 선수의 문제도 특정 감독의 문제도 아닌 것처럼 말이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문제를 쉬운 명제로 단순화할 것이 아니라 보다 치열한 토론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인지 유창성을 극복하는 유일한 해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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