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순 청주시환경관리본부 지하수팀장

박학순 <청주시환경관리본부 지하수팀장>

 “남을 웃길 수 없다면 잘 웃기라도 해라.” 어느 개그맨의 말이다.

청주시를 찾는 유명 인사나 외부 강사들은 ‘교육도시’, ‘양반 고을’, ‘충절의 고장’ 등 온갖 수식어를 들어가며 “양반들이라 그런지 무슨 말을 해도 표정 변화도 없고 잘 웃지도 않네요.”라고 말하곤 한다.

정말 청주 사람들은 양반인가? 그래서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인가? 강연의 내용이 웃기지 않아서인가?

보통 사람들은 억지로 웃거나 웃음을 참을 수 없기 마련인데, 강연이나 공연장에서 잘 웃지 않는 사람들은 감정을 숨기려는 심리적 작용에 따라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고 이는 무대 내용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들어 결국 웃어야 할 타이밍을 놓치거나 자기감정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강사들이 잘 웃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객석 반응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일 것이다.

어째서 강사들은 청중을 웃기려 하는 걸까? 밀폐된 공간에서 이목을 집중시켜 관객들의 호응을 극대화하고 이를 통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함에 있다.

아무리 훌륭한 강사라 하더라도 강연에서 관객의 반응이 없다면 그것은 명 강의가 아니다. 그만큼 청중들의 리액션은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 요소라는 것이다.

관객의 웃음이나 작은 표정 변화도 내적 감정의 외적 표현이며 이는 곧 소통이고 소통 없는 강연은 책보다 못하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웃고 나면 두뇌회전이 빨라져 집중력이 향상된다는 어느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웃음이 부족한 건 사실이나 웃을 일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웃는 습관이 부족해서다. 어른이 한 번 웃으면 집안 분위기가 달라지고 직장 상사가 웃으면 부하 직원도 웃을 준비를 한다고 한다. 이성 간에도 남성보단 여성이 많이 웃으려 하며 여성보단 남성이 더 웃기려 노력한다고 한다.

우리는 항상 웃을 자세가 돼 있어야 하고 웃는 훈련도 필요하다.

함께 웃는 시간이 필요하다. 웃음에는 전염성이 있어 한 사람이 웃으면 덩달아 웃고 혼자 있을 때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30배 더 많이 웃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자신 앞에서 웃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흔히 길거리나 술집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 앞에서 웃다가 해코지를 당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나 또한 민원인 앞에서 웃다가 봉변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웃어도 될지 말지를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절대 웃어서는 안 될 자리에서 웃는 사람은 환자로 취급당하기 일쑤다.

TV가 처음 보급되던 시절 온 가족이 모여 앉자 개그 프로를 볼 때면 아이부터 노인까지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요즘은 어떠한가? 3대가 함께 개그 프로를 본다고 생각해보자. 그들은 과연 함께 웃을 수 있을까? 방송사의 특정 연령대를 겨냥한 프로듀싱과 시청률 경쟁도 한 몫 하겠지만 더 큰 이유는 웃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 ‘웃으면 복이 와요’나 ‘유머 일 번지’는 소품과 분장에 의한 몸 개그로 모든 연령대에 웃음을 줬다면 지금은 우리 스스로 웃음을 찾지 못하면 함께 웃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웃음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고 가장 불행한 사람은 웃기지도 못하면서 웃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재치도 눈치도 필요 없다. 그냥 웃으면 된다. ‘일소일소 일로일로(一笑一少 一怒一老)’라 했다. 우리 모두는 함께 웃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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