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 논설위원 / 중원대 교양학부 교수

이현수 논설위원 / 중원대 교양학부 교수

(동양일보 이현수 기자) 의지했던 선배에게 시답잖은 헌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글이 그러하다. 어떤 이유에서건 같은 시대를 한걸음 앞서 살아온 선배들이 하나 둘 곁을 떠날 때, 나는 건조했다. 어느 날 카톡으로 날아든 선배의 근황 사진. 험한 산길을 걷고 있는 그는 사뭇 비장했지만 외로웠다. 퇴직이라는 서늘한 경계 앞에서 설익은 덕담으로 선배를 떠나보낸 동안, 이름 모를 산들은 선배의 ‘산티아고’였으며 여름 산 지천에 널린 패랭이꽃은 위로였을 것이다. 아, 무심했다.

내 주변의 선배들은 서생부터 반건달까지 다채로운 이들이 모여 있다. 나와의 인생을 더불어 흐르고 웅덩이로 고여 간다. 선배들은 기질을 따져 대강 두 부류로 갈라 칠 수 있다. ‘가족’이 좋아하는 선배와 ‘후배’들이 좋아하는 선배다. 후자가 되려면 극적인 요소를 갖춰야 한다. 후배에 대한 사역 같은 헌신의 기억, 늦은 술자리 귀가에도 형수 눈치 보지 않는 마초의 이미지. 그게 없으면 ‘오지고 지리는’ 카리스마라도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종속적 동거를 하는 이들에겐 여간해선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후배들이 좋아하는 선배들은 그렇게 가족의 양보와 희생 위에 후배들을 후하게 건사했다. 받는 것에 익숙해하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은 소론보다 거대 담론에 익숙하다. 개인보다 집단의 가치를 지금의 청년세대에게 뜬금없이 강요할 수 없단 걸 나도 알고 떠나간 선배도 알고 있다. 30년 전 자신도 두려웠을 맨 앞자리에서 우리를 이끌었던 선배는 어느 순간엔가 앞서가는 후배들의 대오, 맨 뒤에 쳐져 약한 어깨의 그늘로 늘어졌다. 산이 좋아 주말이면 무리를 지어 다녔던 그가 이제는 홀로 산길을 걷는다. 퇴직을 앞두고 언젠가 함께한 산행에서 선배의 느린 걸음은 그의 인생을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자생적 퇴물이 되어 감을 걸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남들은 내게 가치나 사람보다 현실을 살라고 윽박지르는데 그게 그리 중한가?” 그는 일관되게 사람과 삶의 가치를 따라가고 싶어 했다. 직장에서 그의 승진은 늘 누락되기 일쑤였고, 나이 오십 중반에 이르러서야 서울 근교, 32평 아파트를 은행 대출을 끼고 장만했다. 집들이에 찾아간 후배들 앞에서 이젠 이사 갈 일 없다며 한시름을 놓은 표정으로 마냥 포만해했다. 사회의 주류가 되지 못하더라도 관계의 반듯함을 포기할 수 없다는 그였기에 내 집을 산다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최소한의 책무를 다한 성취감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후배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정년을 4년 앞두고 평생 몸담았던 직장을 나왔다. 서슬 퍼런 은행 빚은 어쩌자고.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듬직한 맏형으로 모임에 당연 호출됐던 선배의 자리가 어느 틈엔가 뒤로 밀려났다. 후배들이 대중의 기호에 맞는 언어와 처세로 시대를 따라갈 때 그는 공동체와 인간의 대한 예의로 박제되었기 때문이다. ‘서생의 문제의식’은 탁월했지만 ‘상인의 현실감각’을 닦는 데엔 서툴렀다. 부모님을 모시고 세 자녀를 키우며 겪었던 모진 생활고의 원인이다. 한발이라도 헛딛게 되면 온 가족이 결딴난다며 매사에 진중했던 선배의 걸음이 느린 아다지오라면 후배들의 걸음은 빠르고 경쾌한 프레스토였다. 격변하는 세상은 그의 더딘 걸음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상처는 평생 진물 나는 까만 옹이로 남는다. 그 울퉁불퉁한 표면 위에 모진 경험들이 거칠게 쌓여 흉터로 자리 잡는다. 사람들은 그 흉터로 타인을 응시한다. 퇴직한 선배 인생의 상처를 보상하는 존재가 될 수 없고, 되지 않아도 된다는 내 졸렬한 한계를 흉터마냥 인정하고 나니 마음은 한결 수월해졌다. 나의 지독한 이기심을 에둘러 위로하려 ‘그래 외로움의 기억은 나도 있으니까’, ‘모두가 이별하니까’라고 말이다. 그러나 궁색하다.

평생직장이라는 유토피아는 이제 소멸되었다. 나이 50이 넘어서면 고지로 가는 길에 해가 지기 시작한다. 걷다 서다 반복하며 해가 얼마나 지평선에 닿았는지 확인하며 서두른다. 그때의 조급함이 욕심이 되고 집착이 된다. 누구나 인생의 목표는 수평이 안 맞는 세탁기처럼 덜덜거릴 것이다. 애써 그 소음을 듣지 않으려 할 뿐이다. 그렇게 구악(舊惡)이 되어갈 뿐이다.

우리는 종종 밀어 올려 진 위치를 스스로 밀고 올라간 것으로 자만한다. 차지한 자리를 곧 자신의 능력이라 여기기도 한다. 처신의 옳음은 자기 객관화에서 나온다. 퇴직한 선배를 대하는 태도는 선배의 물러남이 있었기에 나의 자리가 있으며 그의 외로움이 곧 들이닥칠 나의 모습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응시 없이 이뤄지는 직시는 없다. 조직 내 생계는 대개 선배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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