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아니, 그 술고래가 오늘 같은 날 왜 아직꺼정 안 올까?” 동네로 새로 전입해 들어온 집에서 오늘 동네사람들에게 한 턱을 내는 날이다. 어김없이 음식상에 올라온 소주병을 따고 주욱 잔을 돌리면서 술고래 정가를 두고 서씨가 한 말이다. “그러게 말여 오늘 같은 날엔 술이 빠지지 않는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 사람인데 말여.” “난 그 속을 알제.” “뭐여 무슨 사연이 있는감?” “있제. 내도 안사람한테 들은 얘긴데, 그저께 읍내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의사의 금주령이 내렸댜.” “금주령?” “그려, 당장 술을 끊지 않으면 한 달 안에 죽는다고 엄포를 놓더랴. 그래 그럴 거여.” “그렇게 술 많이 먹지 말라는 주위사람들의 말은 노상 귓등으로 듣던 사람이 의사의 금주령엔 꼼짝 못하는구먼.” “그려, 금주령이 무섭긴 무서운가벼.”



금주령(禁酒令)! 지난날에 나라에서 술 마시는 것을 금했던 법령이 금주령이다. 옛날엔 쌀로 술을 빚었기 때문에 쌀의 소비를 줄여 식량사정을 좋게 하기 위해 가뭄이 크게 들거나 흉작이나 기근이 있을 때 금주령을 내렸다. 그러니 이를 어길 땐 큰 벌을 내렸다. 하여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무섭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사의 금주령이 내려졌는데도 시큰둥하게 여긴 사람이 있잖여.” “그려, 작년에 죽은 허서방을 두고 한 말 같은데 그 사람이 그랬지.” “맞어, 그 사람 병원에서 술 먹지 말라고 먹지 말라고 당부 당부를 했다는데도 이를 어기고, ‘세상 얼마나 더 살고 죽을 것이냐.’ 하면서, 먹고 마시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왜 못 마시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마시고 또 마시더니 석 달도 못 살고 죽었잖여.” “그 정도 되면 중독여 중독, 중독에 걸려들면 자기밖엔 모른대잖여. 남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는겨.” “오죽하면 그 안에서 술 먹지 말라고 노래를 하면서 술병만 보이면 다 없애버리고 아주 밖엔 못 나가게 감시를 철저히 했었대잖여.” “밖에는 왜 못 나가게 햐?” “술 마시는 사람들만 만나면, 얼마나 더 살려고 사리냐며 괜찮다며 괜찮다며 들 쑤성거리는 바람에 자꾸 먹게 된다는 거제.” “마누라가 아무리 그러믄 뭐햐 그 어머니가 문젠데.” “그려, 그 노친네 땜에 안 돼. 듣기로는 그 어머니가 웨래 술을 뒤로 며느리 몰래 댔대며?” “그렇댜 글쎄, 며느리한테 들키믄, ‘나 봐라 나, 지금 이 나이 되도룩 담배를 육장 피워대도 죽지 않고 지금껏 살아 있지 않느냐 다 제 명대로 사는겨.’ 하면서, ‘먹고 싶은 거 못 먹게 하는 것두 죄루 가는 일여. 얼매나 먹고 싶으면 그러겠냐. 그러니 한 치 건너 두 치여 니는 못 먹게 말려두 이 어미는 그 못 먹는 자식이 얼매나 안쓰러운지 몰러 그러니 니도 그냥 눈감고 지냈으면 한다.’ 이러면서 글쎄 웨래 며느리를 야속하게 여겼다니 말여.” 그 시어머니 올해 구십팔 세 아닌가. 그런 시어머니가 오십여 년이 넘도록 담배를 피우면서도 정정한 것을 보고는 며느리가, “어머니, 담배만 안 피우시면 백세를 넘기셔서 백오십, 이백세까지도 넉근히 사실 텐데요. 할라치면, ‘염려 마라. 안 끊어도 삼백 살까지 살 거다. 그러니 내 걱정은 말고 니 서방한테 주는 술이나 막지 마라!’ 했다는겨.” “그래서 그 며느리는 그 후부터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내방쳐뒀다는 거 아녀.” “그러니, 그 허서방 제 형 둘이나 놔두고 육십도 안 돼 먼저 갔지.”



이러는 이들의 대화 속에 지금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대동계장이 끼어든다. “자네들, ‘주금에 누룩장사’ 라는 말 들어봤는가?” “아니, 그게 뭔데?” “내도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한테 들은 말여 들어들 봐. ‘주금(酒禁)’이라는 게, ‘함부로 술을 빚거나 팔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했다’ 는 말인데, 이 와중에도 누룩(밀을 굵게 갈아 반죽하여 띄운 것. 술을 빚는 발효제로 쓰임)을 몰래 만들어 파는 장사꾼이 있었다는겨.” “참 눈치코치도 없네.” “그 정도가 아니라 뭘 모르는 사람이제. 하여, ‘소견이 없고 사리에 어두워서 소용없는 짓을 하는 사람’ 을 빗대서 이르는 말이라는겨.” “그러한 말이로군. 그런데 그게 시방 이 자리에 무슨 뜻이 있어 하는 말인가?” “앗따 이 사람아, 그야말루 뭘 모르는 사람일세. 시방 우리가 아직 안 온 그 술고래 정가하구 죽은 허서방 애길 하고 있잖여.” “맞네, 그 술고래 정가는 금주령을 이제부터라도 질 지키고 있다니 아주 다행으로 더 오래 살겠으나, 작년에 죽은 허서방 마냥 소견이 없고 사리에 어두워 소용이 없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하니 자네들도 알아서 술을 마시게!”

이에, ‘우리는 반주 정도로 한잔씩 하는 거’ 라며 다시 술잔을 돌리면서 껄껄 들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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