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기자) 허망하다. 수많은 정치인중 한 사람의 죽음에 불과하지만, 이만큼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비보로 다가오진 않았다. 왜 그의 죽음 앞에서 맥이 빠지고 황망함을 감추지 못할까.

‘진보의 파수꾼’ 노회찬, 63세. 3선 국회의원(정의당 원내대표). 어찌보면 한창 일할 나이에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전날 여·야 원내대표들과 방미일정을 마치고 캐리어를 들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것도 잠시, 그는 그 다음날 싸늘한 주검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지난 23일 오전 9시38분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진 채로 발견된 노회찬. 그가 투신한 아파트는 어머니와 남동생 가족이 사는 곳이다. 자필 유서 3통도 발견됐다.

당에 남긴 유서에서 그는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며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2016년 3월 두차례에 걸쳐 경공모(경제공진화모임)로부터 모두 4000만원을 받았다”며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고 적었다. 이어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다.

그는 유서에서 밝혔듯이 드루킹 김모(49·구속기소)씨 한테서 받은 정치후원금에 대해 특검 수사망이 좁혀오자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에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고 고백한 점을 보면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는 지를 짐작케 한다.

솔직히 과거 다른 정치인들이 수수한 불법정치자금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액수가 적은데 꼭 이렇게 까지 목숨을 내던졌어야 했냐고 묻고 싶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론 정치권에 향후 더욱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국민적 메시지로 작동할 것이라는 기대도 해 본다.

무엇이 노회찬의 죽음을 안타깝게 하는가. 그의 정치여정이 증명해 주고 있지만 특히 권력에 맞서고 정치를 유쾌하게 풀어낸 ‘진보의 파수꾼’이었기에 더욱 슬프고 아깝다.

그는 사회주의와 진보의 가치를 시민과 소통 가능한 언어로 번역해 국민들에게 어필한 ‘희귀한 정치인’, ‘클린 진보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어찌보면 진보하면 난삽하고 현학적이고, 체제에 맞선 강퍅하고 성마른 얼굴로 표상되는 것을 그는 교양과 품위, 여유와 유머로 풀어내 진보 정치인이지만 국민들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했는지 모른다. 무조건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하지 않고 특유의 달변으로 같은 진보의 언어라도 친숙하게 토해내 국민들 속을 시원하게 해 줬다.

그의 촌철살인 어록은 그래서 더 돋보인다.

“대한민국 법정에서 만인이 평등합니까? 만 명(1만 명)만 평등한 것 아닙니까(2004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공수처 설치 반대하는 야당을 비판하며) 동네 파출소가 생긴다고 하니까 그 동네 폭력배들이 싫어하는 것과 똑같은 거죠. 모기들이 싫어한다고 에프킬라 안삽니까?(2017년 9월 라디오 인터뷰)”

그의 청량한 사이다 발언 한방 한방은 척박했던 진보정치가 그나마 국민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게 한 희망이 됐다.

또 그는 2005년 삼성 떡값을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검사들 명단을 공개해 의원직을 잃기도 했다. 당시 누구도 엄두내지 못했던 삼성과 검찰이라는 거대 권력에 맞선 의도된 도발이었지만 국민들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불법정치자금의 저격수로 불리던 그였기에 ‘정상적 후원절차를 밟지 않은’ 정치자금을 받은 게 불법정치자금 수수로 언론에 보도되자 스스로 감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의당의 지지율이 자유한국당을 제치고 야당 가운데 1위를 노리는 상황에서 자신을 둘러싼 논란이 향후 당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자신의 말과 주장, 행동에 대한 무한대 책임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단으로 대신했다.그렇다고 도덕성이 무너졌다고 극한으로 몰고 가 극단의 선택을 한 것은 안타까움만 안겨 줄 뿐 용기있는 행동이 아니다.

고통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만의 몫일까. 인정하기 싫지만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좋은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더라도 좋은 사람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보수·진보의 대립을 떠나 한국 진보정치의 간판 노회찬 죽음에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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