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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 서서 / 유영선이 만난 사람 - 조동일 국문학자
이 길에 서서 / 유영선이 만난 사람 - 조동일 국문학자
  • 유영선
  • 승인 2018.07.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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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거수老巨樹에 험준한 세상살이 물으니… “품위있게 살아야”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조형갤러리. 그곳은 거대한 나무들이 만든 숲이었다. 머리를 맑게 해주는 산소였고, 바람이었고, 가슴을 울리는 음악이었다. 100개의 거목들이 숨 쉴 여백조차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곳. 그 곳에 바로 국문학자 조동일 명예교수가 직접 그린 노거수老巨樹들의 그림이 있었다.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조형갤러리. 그곳은 거대한 나무들이 만든 숲이었다. 머리를 맑게 해주는 산소였고, 바람이었고, 가슴을 울리는 음악이었다. 100개의 거목들이 숨 쉴 여백조차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곳. 그 곳에 바로 국문학자 조동일 명예교수가 직접 그린 노거수老巨樹들의 그림이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조형갤러리. 그곳은 거대한 나무들이 만든 숲이었다. 머리를 맑게 해주는 산소였고, 바람이었고, 가슴을 울리는 음악이었다. 100개의 거목들이 숨 쉴 여백조차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곳. 이들에 압도된 채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작가가 직접 쓴 붓글씨 한 점이다.

“.....나무 가운데 으뜸인 노거수(老巨樹)는 죽음이 가까워오면 더욱 위대하다. 오랜 세월과 함께 속이 파이고 겉이 갈라지고 가지가 꺾이면서 존재의 핵심, 이치의 궁극(窮極)을 깨달아 지혜로 삼기 때문이다. 노거수(老巨樹)에게 험준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 자리를 여기 마련한다. 아무도 없고 새 한 마리도 날지 않아 안팎이 열려 있는 그림을 모아 놓고, 누구든지 내 고향이라고 여기고 쉽게 들어갈 수 있게 한다.....”

그 글처럼 험준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기 위해 노거수 앞에 섰다. 노거수를 그린 작가이자 원로 국문학자인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그는 올해 팔순(八旬)이 되었다.



-붓을 잡으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고등학교때 그림을 좀 그렸어요.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님 반대로 꿈을 접고 학자로 일생을 살았지요. 2004년 서울대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 본격적으로 붓을 잡았어요.”

조 교수는 영남대,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대 교수와 계명대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문학비평과 고전문학 연구에서 독보적 업적을 이룬 국문학자다. 80여권의 저서를 냈으며, ‘한국문학통사’는 우리 문학계의 뿌리를 찾아낸 불멸의 명저로 통한다.

-노거수들만 그리시나요. 이렇게 나무만 그리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처음엔 풍경화와 산수화를 주로 그렸습니다. 2010년 부부합동전을 열기도 했지요. 그 그림들로 ‘산산수수(山山水水)’라는 화집을 낸 뒤, 5년 전부터 수령이 오래된 거목인 ‘노거수’만을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고목들은 썩고 가지가 잘리고 구멍이 파이는 등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연륜이 오래될수록 품위가 있고 자연 그자체로 생명을 유지하는 지혜가 있어요. 사람도 노거수처럼 나이가 들수록 품위있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전시장의 그림 배열에 특별히 신경을 쓰신 것 같습니다.

“네. 관람객들이 편안하게 전시장을 돌 수 있도록 생각을 해봤습니다.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봄부터 여름, 가을, 겨울 순으로 계절에 따라 그림들을 배치해봤고. 끝부분쯤에는 요즘 세태를 풍자하는 그림을 좀 걸어봤습니다. 그러다보니 매화군락이 한 점, 버드나무들이 한 점, 느티나무도 한 점, 소나무도 한 점이 되어 결국 전시장 전체가 한 점의 나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말씀을 듣고 보니 구획별로 나무가 다르네요. 색감도 크게 다르고요.

“제가 그리는 노거수는 매화, 버드나무, 느티나무, 소나무 네 종류입니다. 매화는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하는 나무입니다. 겨울을 나면서 죽은 듯이 보이던 고목나무 가지에서 어느 날 잎도 없이 눈부시게 꽃이 피죠. 고고한 아름다움과 환희가 느껴지는 봄의 나무입니다. 버드나무는 여름나무입니다. 휘휘 늘어진 초록색 버드나무가지를 보고 있으면 그 사이로 바람이 보이고, 그 바람에 잎들이 거문고를 타는 듯 음악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죠. 싱싱한 생명입니다. 느티나무는 제가 가장 즐겨 그리는 나무입니다. 당산목이 느티나무이듯 노거수로서 품위도 가장 잘 나타나고, 가을이 되면 단풍색이 예쁘죠. 그래서 가을나무로 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겨울나무로 소나무를 그리는데, 이 녀석을 그리는게 제일 어렵습니다. 소나무는 지절이 높은 나무인데 그만큼 솔잎이며 오래된 가지를 그리는게 까다로워요.”

-그림들이 색감이 강렬하면서도 산뜻해 보입니다. 사용하시는 물감이 좀 다른 것 같아 보입니다만.

“아, 저는 구아슈(gouache)라는 물감을 씁니다. 구아슈는 아라비아고무를 섞어 만든 불투명한 수채 물감으로 수채화처럼 가볍지도 않고, 유화처럼 두껍지도 않으면서 동양화와 서양화의 느낌이 두루 나는 재료입니다. 수채화는 물감의 입자가 종이 속으로 스며들어가지만, 구아슈는 물감이 종이표면에 그대로 남기 때문에 직접 반사되는 광채가 달라요. 부드러운 질감도 살릴 수 있고 빨리 마르는 것이 장점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사용을 하지 않는지 구아슈를 만들지 않아서 할수없이 이태리나 스위스 제품을 사서 쓰고 있어요. 그런데 소나무의 검은 색만큼은 물감을 쓰지않고 전통 먹으로 그립니다.”

그의 화폭 속 나무들은 늙었지만 모두 거대하다.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은 모습이 역동적이면서도 연륜과 품격이 묻어난다.

-그림을 보면 나무 전체를 그리지 않으셨어요. 굵은 줄기나, 가지, 잎 꽃 등을 의도적으로 확대해서 그리신 것 같습니다.

“나무 전체를 그리면 크게 그릴 수가 없어요. 그러면 노거수의 거칠면서도 우렁찬 표정을 살리기가 어려워집니다.”

-작품들에 액자표구를 하지 않으셨네요. 모두 몇 점이나 되는지요.

“일부러 액자나 표구를 하지 않았어요. 유리 액자가 자칫 그림 감상을 방해할 수도 있어서 고객과 작품의 거리를 가깝게 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전시하면서 그림을 원하는 고객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즉시 떼어주고 빈 자리엔 새 작품을 붙입니다. 이번 전시회에 모두 300점을 준비했는데 공간이 남지 않게 촘촘히 걸어도 100점 밖엔 걸 수가 없어요. 그래서 다른 그림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300점 모두를 실은 ‘노거수전’ 화집을 만들었습니다.”

-아니 전시가 끝나기 전인데도 작품을 떼어주신다고요?

“물론이죠. 관람객들이 전시회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을 경우 바로 갖고 싶지 않겠어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전시회 작품을 구매하면 그 전시가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하죠. 그리고 작품이 손상되지 않게 보내주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시회에서 그림을 원하면 그때의 감동을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도록 바로 떼어서 포장해 드리고 그 빈자리는 다른 그림을 채웁니다.”

-듣고 보니 매우 현실적인 작품판매 같습니다. 실례입니다만, 지금 전시된 작품 중에 새 작품이 몇 점이나 바뀌어 걸린 것인지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전시된 100점 중에 어제까지 75점을 새로 걸었네요. 물론 그림값은 받고 줍니다. 그냥 주면 소중하지 않게 여기게 되고 함부로 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림을 잘 간직해 달라는 보증금 조로 100만 원을 받습니다. 보증금이 없는 분들에겐 후불제로도 드리려합니다. 특히 공부하는 대학원생들에게는 장기후불제로, 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때 부조금 대신 내도 된다고 말해주려 합니다.”

-그림에 쓰인 화제(畫題)때문인가요? 교수님의 그림을 볼수록 시를 읽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림과 화제가 보면 볼수록 가슴에 와닿는데요, 교수님은 화제부터 생각하시고 그림을 그리시는지요?

“그림이 시처럼 읽히는 것은 화제가 고전문학의 전공분야에 속하기 때문일거예요. 옛날엔 문학과 미술이 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인화는 그 사회의 문화유산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미술이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문학은 문학대로, 미술은 미술대로 따로 놀지요. 저는 어느 것이 먼저랄 것 없이 화제와 그림을 동일하게 생각하며 작업을 합니다.”

청고(靑鼓) 조동일 교수의 그림을 그림만으로 볼 수 없는 것은 한자로 쓴 4자성어의 화제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것은 맛깔스럽고 어느 것은 기분좋고 기운이 생동하며 희망적이다가, 때로는 안타깝고, 허망하고, 촌철살인처럼 날카롭게 세태를 비판하는 문장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이 옛 문인화처럼 시와 그림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분홍빛 매화꽃을 보며 은하주렴(銀河珠簾)을 생각하고, 야매청신(野梅淸新) 춘매몽중(春梅夢中)으로 아련한 그리움을 갖게 하며, 초록빛 느티나무에서는 심중비곡(心中祕曲), 수상춘가(樹上春歌), 심무신무(心舞身舞)로 음악과 춤을 느낀다. 느티나무는 단풍이 화려하지만, 잔설잔화(殘說殘話), 잔일잔시(殘日殘時)처럼 남아있는 시간들에 대한 애틋함과 잎이 떨어지면 만사일소(萬事一笑)로 삶의 철학을 보여준다. 천고불변(千古不變), 구도심염(求道心炎)의 소나무, 그리고 위인적막(偉人寂寞), 명인실우(名人失友), 거인난와(巨人難臥) 등 귀감이 되는 그림들이 눈길을 끈다.

-혹시 별도로 그림공부를 하시진 않으셨는지요.

“그림은 따로 배울 필요가 없어요. 대신 선조들의 옛그림을 많이 보았지요. 겸재 정선과 소정 변관식 그림을 특히 좋아했어요.”

-쏟는 시간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하루에 4~5시간 그림을 그립니다. 4점을 시리즈로 묶어서 그리는데, 한두 시간 안에 기본을 완성합니다. 그리고 1주일이나 열흘 정도를 걸어두고 계속해서 손질을 하지요. 그러니까 한 작품 완성하는데 짧게는 1~2시간, 길게는 열흘 정도가 걸리는 셈이지요.”

-동안(童顔)이시라서 춘추를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교수님 일상이 궁금하네요.

“규칙적인 생활을 합니다. 5시30분 기상, 7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8시에 정확하게 서재로 출근합니다. 오전시간은 책 읽고 글 쓰고 학문에 몰입하다가 점심에 잠깐 외출해서 지인들과 식사를 하고 오후에 다시 출근합니다. 오후시간엔 주로 그림을 그리고 밤 9시가 되면 퇴근을 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내 매주 등산도 하고 있어요.”

조 교수는 지난 2월 부인(허정)이 세상을 떠난 뒤 군포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 그는 아파트 건넌방 서재의 드나듦을 출근과 퇴근이라고 말했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나요?

“아침은 가볍게, 점심은 주로 외식으로, 저녁은 직접 해먹어요. 밥은 어수리와 흑미오곡을 넣어 짓고, 잘 하는 반찬으로는 올리브유에 간고등어를 놓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거예요.”

-학술활동이나 저술활동도 여전히 왕성하시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일정은 어떠신지요.

“그림을 그리는 것과 별개로 글쓰고 강의하는 것은 제 일상입니다. 지난 5월엔 단국대학교에서 열린 미래교육포럼에서 ‘일반교육 내실화’에 대해 발표했고, 6월엔 퇴계학부산연구원 주최 행사에서 ‘한국의 시대가 오는가?’로 강연을 했어요. 2학기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고전문학특강 공개강의를 할 예정이고, 9월엔 한국언어문학회 학술대회에서 기조발표가 있고, 11월엔 국립민속박물관과 ‘한국의 문화유산, 전북지방의 현장에서’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해주기로 했고, 또 대한민국학술원에서 학술정책 개선방안에 대한 발표도 계획돼 있어요. 책도 계속 펴내고 있지요. 최근 ‘시조의 넓이와 깊이’ ‘해외여행 비교문화’라는 책이 나왔는데, 앞으로도 몇권을 더 내려고 원고를 쓰고 있어요.”

빽빽한 일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자, 조 교수는 갑자기 손사래를 치며 “기사 쓸 때 내 얘긴 말고, 그림얘기만 써달라”고 했다.

-풍경화-산수화-노거수화. 다음엔 또 무엇을 그리실지 기대가 됩니다.

“한동안 노거수를 더 그릴 것 같습니다. 그런 다음 산을 그려보고 싶어요. 산은 고결하고 높으면서도 탈속(脫俗)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죠.”

새로운 계획에 눈을 반짝이는 청년 같은 노(老)학자. 노거수(老巨樹).

인터뷰를 마치고 갤러리를 빠져나오면서 돌아다 보니, 인사동 분주한 거리 뒤로 온전히 거대한 나무들로 가득 채워진 숲 공간에서, 그는 이미 자연이며 생명인 한그루 나무가 되어 있었다.



■ 조동일趙東一 국문학자는…

*1939년 경북 영양군 일월면 출생

*대구에서 초·중·고 졸업

*1962년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1966·68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동 대학원 졸업

*1976년 국문학 박사

*1987년 서울대 교수

*2004년 서울대 명예교수

*2007년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2010년 9월부터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

*프랑스 파리7대학, 일본 동경대학, 중국 연변대학, 산동대학,

중앙민족대학, 북경외국어대학에서 강의

*일본, 중국, 대만, 인도, 카자크스탄,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독일, 영국, 스웨덴, 러시아,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이집트, 남아프리카에서 강연 또는 발표

*저서 <한국문학통사> <동아시아문명론>등 79권,

<비교문학총서> <한국구비문학대계>등 공저 편저 31권

*이메일 : s213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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