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고용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나라는 기업이 근로자를 한번 채용하면 아주 절박한 사유가 아니면 해고가 매우 어렵다. 이같은 이유로 기업들은 매우 신중하게 정규직을 채용하고 그 숫자도 극히 제한적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달리 근로기간과 인원의 예측 가능성이 높고 정규직보다 합법적으로 해고가 용이하다. 기업이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비용이 정규직보다 절반 이상 덜 드는 것도 매력적이다.

그들은 정규직과 비슷한 일을 하지만 급여는 정규직의 50∼60%에 머물거나 그보다도 적다. 물론 업무도 힘들고 위험한 일에 내몰리는 경우도 많다. 몸과 마음이 고달픈거야 참을수 있지만,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불안감에서 오는 스트레스, 예측 가능성 없는 하루하루의 생활에 심지어 근무중 숨지기도 하는 사례도 있다.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할때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경영진의 책임을 지적한다.

맞다. 가진자, 비정규직 여부를 결정할수 있는 위치에 있는자,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있는 자들에게 가급적 정규직으로 채용하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서 책임질 일은 하나도 없는 그 회사 사원들에게도 책임을 묻거나 수수방관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내놓을까.

비정규직 문제의 속을 뒤집어 보면 현재 근무중인 정규직 일반 사원들의 묵시적 담합이 비정규직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더 크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회사의 경영성과가 본인의 사적 이익과도 직결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게 일반사원들이다.

회사가 잘 돼야 보너스와 성과급도 두둑히 받을수 있고, 경기 불황기에는 나 대신 나가 줄 사람도 필요하다. 자신의 고임금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상대적으로 훨씬 낮은 비정규직의 저임금 덕분이라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정규직 사원들은 비정규직의 존재가 나쁘지 않다.

비정규직에 대해 정규직들이 느끼는 상대적 우월감, 현재 누리고 있는 사내 복지와 혜택, 두둑한 급여가 앞으로 더 계속되려면 정규직을 늘리기보다 비정규직을 더 채용하는게 훨씬 낫다는 것을 계산상으로도 아주 잘 안다.

그래서 놀랍게도 신입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현재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지 않는 기업내 분위기는 경영진에 못지않게 정규직 일반사원들이 더 바라고 있는 일일수도 있다.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경영진에게 정규직들이 주는 묵시적인 동의이자 지지인 셈이다.

정규직 사원들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할 ‘공정성’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 비정규직 사원들이 받는 불공정한 희생과 처우를 알면서 나의 기득권과 부를 유지하기 위해 비정규직 문제를 묵시적으로 지지하고, 그들의 홀대와 불공정을 나몰라라 하고 있지 않은지, 그것이 공정하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라.

그들이 삶에서 느낄 일정한 행복을 지금 내가 뺏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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