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 영 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 유영선 기자) 그새 5년이 되었구나. 기억하니? 제돌아.

2013년 7월18일 너는 네 고향 바다로 돌아갔지.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던 네가 풀려나 제주바다로 돌아갈 때 우리는 네가 흘리는 눈물을 보았다.(사실 돌고래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지 못하지만, 눈물로 보이는 점액질을 우리는 ‘제돌이의 눈물’로 보기로 했다.) 그리고 참 많이 부끄러웠다. 그때 네가 흘린 눈물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너를 두고 사람들은 많은 논란을 했었다. 너를 보내야할지, 사람들 앞에서 그대로 돌고래쇼를 하도록 두어야할지. 그것은 사실 너의 ‘선택’이어야 했다. 그러나 제돌이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때 너를 사랑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은 너와 네 친구들이 자신들의 서식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족관에 갇혀 있던 남방큰돌고래들, 제돌이 너와 네 친구 춘삼이 삼팔이는 제주바다로 옮겨져 방생되었다. 휘익 돌아서면 코가 닿는 답답한 콘크리트 수족관에서 냉동 생선만 얻어 먹으며 겨우 목숨을 이어가던 너희가 너른 바다에서 어떻게 지낼지 잘 살고 있는지 모두 궁금했었다. 그런데 2017년 제주 앞바다에 제돌이 네가 나타났었지. 네 등지느러미에 표시해둔 1자가 선명해서 바로 너인줄 알았다. 친구들과 유유히 멋지게 헤엄을 치는 너를 보고 사람들은 가슴이 벅차서 환호했었어. 네가 야생성을 회복하면서 자연에 적응하고 있는 것이 너무도 기뻤던 것이지. 너를 안고 제주로 날아가 방생을 도운 최재천 박사에 의하면, 네 친구 삼팔이는 벌써 네마리의 아기고래 엄마가 되었다고 한다.

제돌아, 너를 바다로 보낸 뒤 우리는 비로소 사람들의 권리인 인권 못지않게 동물의 생명권과 자유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단다. 어떤 선진국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낸 뿌듯함은 그뒤 더 많은 네 친구들을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게 됐지. 태산이, 복순이 그리고 대포, 금등이도 네 뒤를 따라 자연으로 돌아간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자연으로 돌아간 너희들과 달리 우리나라 몇 곳에서는 여전히 좁은 수족관에서 쇼와 체험에 이용되며 학대와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돌고래가 39마리나 있다고 한다. 돌고래 교육과 생태체험이라는 미명으로.

최 박사는 말했어. 하루 100km를 달리는 너희가 불과 몇십미터 짜리 좁은 수족관에서 살면서 가장 괴로운 것은 엄청난 이명에 대한 스트레스라고. 돌고래들은 깊은 바닷속에서 초음파로 소통을 하기 때문에 청각이 발달해 있는데 수족관에서는 한번 소리를 내면 그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반사돼 치명적인 소리의 공포를 갖게 된다고. 그리고 돌고래는 지능이 높아서 자의식과 관념적인 사고까지 가능하다는 거지.

돌고래들의 자유를 위해 활동하는 릭 오배리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돌고래 조련사였어. 그는 다섯 마리의 돌고래와 함께 1964년부터 67년까지 미국 TV 드라마에 출연했는데, 그가 은퇴한 뒤 수족관에서 살고 있던 캐시를 방문하자, 캐시는 그의 팔에 안겨 수영하다 숨을 멈췄고, 수족관 아래로 가라앉았다는 거야. 돌고래는 호흡을 조절할 수 있는 동물. 그는 캐시가 자살한 것이라고 확신했지. 이후 릭 오배리는 야생 돌고래 포획과 돌고래 쇼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면서 다큐멘터리 영화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에 출연해 일본 다이지에서 벌어지는 야생 돌고래 포획과 살육에 관한 진실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제돌이를 보낸지 이제 5년.

해양생태계는 물론 가축에까지 ‘동물복지’라는 개념이 싹트고 있다. 반려동물이건, 실험동물이건 가축이건 동물을 다룰 땐 동물복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 것. 동물을 보호하는 것이 곧 인류의 삶을 보호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점. 모두 제돌이 너의 효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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