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6.13지방선거에서 궤멸적 타격을 입은 자유한국당이 혁신비대위원장으로 김병준(64) 국민대 명예교수를 영입했다. 국회의원 112석의 제1야당이 겨우 6석에 불과한 정의당과 지지율 경쟁을 벌일 정도니 한국당의 다급한 처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김병준,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일했다. 2006년엔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에 임명됐지만 한나라당에서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해 13일 만에 사퇴했다. 10년 뒤인 2016년 최순실 게이트 와중에 국무총리 후보로 또 지명됐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로 내정자 신분이 소멸되면서 자연 낙마했다. 국무총리를 두 번이나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린 재수가 억세게 없는 사람중 하나다.

그런 그가 국민의 버림을 받은 자유한국당 구원 투수로 등장했다. 자신을 ‘13일짜리’ 국무총리로 만들고, 탄핵으로 인사청문회 자리에 서지도 못하게 한 자유한국당을 살리겠다고 전면에 나선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그의 등판에 기대반 우려반이 상존한다. 정치 경력이 일천한 그가 계파 갈등이 극에 달한 한국당을 혁신할 수 있겠느냐는 것과 한국당 ‘무연고’가 오히려 수술하기 좋은 여건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그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엄청난 권력욕을 가지고 있다. 대권을 꿈꾸고 있다. 지피지기라고 문재인 대통령을 너무나 잘 안다.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면서 자기의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친박 내부에선 상당히 끓고 있는데 조금 더 두고 봐야겠지만 과거 한국당하면 생각하는 그런 비대위원장과는 다를 것이다.”

‘김병준 비대위’ 출범 첫 대외행보는 봉하마을 방문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30일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후 권양숙 여사를 방문했다. 당내 일각에서 반발하는 것에 대해 그는 “우리 사회가 통합을 향해 가야 하고 힘을 모아 국가를 새롭게 만들어가야 할 상황이라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박정희 식 개발과 문재인 정부 국정기조를 국가주의로 규정하며 비판하면서 자유와 분권을 강조하는 ‘노무현 정신’ 계승을 외치고 있다.

남북관계도 안보보다 평화에 방점을 찍고 조국근대화와 안보제일주의로는 미래세대를 이끌 수 없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의 약점인 경제를 집중 부각해 보수세력의 재결집을 시도하면서 정치적 위상 강화를 노린다는 시각도 있다. 박정희 그림자가 짙은 한국당의 노선 갈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김병준의 새 보수 실험 성공여부에 따라 한국당의 존폐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한국당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폭망한 이유는 수없이 많지만, 그중 하나는 콘크리트 지지층을 믿고 막말을 일삼아 국민들을 진저리 치게 한 것이다.

공자는 정치를 ‘백성을 먹이고(食) 지키고(兵) 믿음을 얻는 것(信)이라고 했다. 이중 부득이하게 포기한다면 우선 군대를, 그 다음은 식량을 버리고 백성의 신뢰는 끝까지 지키라고 했다. 군사를 길러 나라를 지키고 백성들을 먹여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신임을 못 받으면 나라를 경영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안보 위기의식을 조장하거나 국민들을 개·돼지처럼 여기고 먹여주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고리타분한 보수를 죽여야 산다.

보수가 살면 곧 자유한국당이 산다. 그러기 위해선 보수의 가치를 더욱 분명히 하고 합리성을 갖춰야 한다. 태극기 드는 사람만 애국자고 촛불 들었다고 빨갱이가 아니란 얘기다.

합리성을 갖추고 비판한다면 부끄러워 숨어있는 샤이 보수들이 결집할 것이고 종국엔 바른미래당과 다시 합칠 날이 올 것이다. 온전한 보수들이 보수라고 말 못하는 이유가 뭔가. 드러내 놓고 낯 들기가 창피하기 때문 아니던가.

김 위원장은 한국정치를 반역사적인 계파 논리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지리멸렬한 한국당을 재건해 새 입주자를 맞이해야 할 책무가 있다. 한국정치의 운동장은 한쪽으로 너무 기울어져 있다. 이건 진보가 잘해서가 아니라 보수가 죽을 쑨 결과다. 어느 정도 균형 잡힌 여당과 야당이 있을 때 국민을 떠 받드는 정치가 온다. 김병준 위원장이 보수를 살려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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