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좋고 물 좋고 시심에 젖는 자연의 길, 역사의 길

동양일보는 3일부터 매주 금요일 변 광섭 작가의 우리동네 숨겨진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때론 밝고 경쾌한 수채화처럼,

때론 그 윽한 여백을 풍기는 수묵화처럼 충북 도 처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을 그려내는
변 작가의 경쾌하면서도 그윽한 필치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까지 더해 독 자들에게 자연을 읽는 재미를 건네 줄 것입니다.

변 작가는 문화기획자 겸 에세이스트 로, 세계일보 기자로 활약한 바 있습니 다.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부장과 동 아시아문화도시 사무국장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즐거운 소풍길’, ‘우리는 왜 문 화도시를 꿈꾸는가등이 있습니다.

우리동네 숨겨진 이야기에 함께 발품 을 판 송봉화 사진작가는 한국우리문화 연구원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수암골’, ‘청천이야기등이 있습니다. 편집자

변광섭 작가, 송봉화 사진작가
변광섭 작가,      송봉화 사진작가

날이 밝아지기 무섭게 새들은 제가끔의 목소리로 울어댄다. 마당의 꽃과 풀들은 저마다 깨어나서 바쁜 숨을 내신다. 햇살이 수련 곁으로 다가가 아침잠을 깨우더니 수련 밑 물속까지 기웃거린다. 작은 연못의 음영이 낮고 느리게 비추고 흔들린다.

뒷산의 소쩍새는 기어코 숲의 비밀을 재잘거리더니 온 동네가 소란스럽다. 그 사이 햇살은 눈이 부시다 못해 한 여름을 불태운다. 정중동(靜中動). 고요 속에서 자연은 저마다의 길을 가고 있다. 자연은 제 색깔을 모를 것이고, 제 운명 또한 알 리 없다. 오직 살아야하고 견뎌야 하며 뒤돌아보지 않을 뿐이다. 인간의 삶만 심드렁하고 갈피 없으며 헐렁하다. 본질을 찾아 나서야겠다. 자유의 본질, 사랑의 본질, 생명의 본질을 향해서 말이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번뇌로 뒤척일 때마다 계곡으로 들어갔다. 산 좋고 물 좋고 햇살과 바람 잘 드는 곳을 찾아갔다. 그곳에 정자(亭子)나 정사(精舍)를 지어놓고 쉬면서 자연에 젖고 학문에 젖고 시심에 젖었다. 특히 기호학파가 계곡을 즐겼는데 계곡의 10리 정도를 구곡으로 나눈 뒤 가장 좋은 명당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우암 송시열은 화양동으로 낙향해 암서재를 짓고 자연을 벗 삼으며 학문을 탐구했다.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다.

암서재. 옛 선비들은 볕좋고 물좋은 곳에 암자를 짓고 마음을 수련했다.

그는 외가인 옥천에서 성장했다. 1633년(인조11년) 성원시에 장원급제하고 최명길의 천거로 경릉참봉이 되면서 관직에 발을 내디뎠다. 이후 그는 봉림대군의 사부가 되었지만 병자호란이 일어나면서 봉림대군이 청나라 인질로 잡혀가자 이곳으로 낙향, 학문에 몰두한 것이다. <주자대전차의>등 10여권의 성리학 저서와 <우암집>을 비롯한 100권이 넘는 문집을 남겼으며, 그의 주자학적인 정치 경제 사회사상은 조선후기 성리학의 정통적 흐름이자 가장 강력한 지배이데올로기로서 기능을 하게 되었다. 초야에 묻혀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준비했다.

화양서원은 송시열이 은거했던 곳에 세워진 서원으로 조선시대 학자들의 결집장소이기도 했다.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보내준 중국 명나라 황제 신종, 의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암서재는 송시열 선생이 만년에 화양동에 은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이다.

이처럼 화양동은 구석구석 송시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구김살 하나 없는 맑은 계곡과 사계절 푸른 소나무 숲과 기암절벽과 푸른 하늘…. 그리고 그 품에서 옛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들썽거리는 일상의 때를 벗고 역사와 자연을 벗하기에 좋다.

하늘을 떠받친 듯 바위가 높게 치솟아 있는 경천벽,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는 운영담, 우암이 효종대왕의 죽음을 슬퍼해 새벽마다 이 바위에서 통곡하였다는 읍궁암, 금싸라기 같은 모래가 널리 펼쳐져 있는 금사담, 큰 바위가 첩첩이 장관을 이루는 첨성대, 구름을 찌를 듯 솟아있는 능운대, 용이 꿈틀거리는 느낌의 와룡암, 바위산에 낙락장송이 서 있고 학이 둥지를 틀었다는 학소대, 넓은 개울에 큰 바위가 용의 비늘처럼 이어져 있는 파곶이 화양구곡이다. 신선의 땅, 명승지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선비들이 시를 노래하고 탁족(濯足)에 풍즐거풍(風櫛擧風)을 즐겼을까.

조선의 선비 이광윤은 “바위는 기이하여 백옥인 듯 번뜩이고, 못 물은 하 맑아 이끼처럼 푸르네. 길이 끝난 곳에 나무꾼 도끼자루 멈추었고, 아름다운 경취는 그윽한 흥취를 이끈다”며 그 비경을 노래했다. 김득신도 “물결치는 은하수, 용솟는 물살은 천리마가 치닫듯 빠르기도 해라. 하얀 바윗돌 눈부시게 깔려있고 영롱하여 호박처럼 빛나네”라며 시심에 젖었다. 자연으로 가자. 우리의 본질, 인간의 아름다움을 찾아 길을 나서자.


글 변광섭 <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사진 송봉화 <사진작가, 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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