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과천서부터 긴다.’ 는 말이 있다. 과천은 서울의 관문이다. 서울 아래 사는 시골사람들이 과천이라는 고장을 거쳐야 서울엘 들어갈 수 있다. 그러니까 서울 밖 변두리인데, 지난날엔 시골사람들이 서울엘 들어가려면 서울의 초입인 변두리서부터 기어야 된다는 말이다. 그만큼 서울은 무서운 곳이다. 영악해빠진 깍쟁이들이 많아서 시골사람들은 판판이 골탕을 먹기 일쑤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섯다 울고 가는 곳’이 줄어 ‘서울’ 이라고 알려져 있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몸가짐을 낮추어야 한다. 실제로 서울 갔다 온 사람이 경험담을 말하기를, 화신상회 건물이 하도 높아 넋 놓고 올려 쳐다보고 있는데 서울사람이 슬그머니 오더니, 몇 층까지 봤냐고 다그쳐 묻길래 6층까지만 봤다고 하니, 그러면 6층까지 본 값만 내라고 하기에 얼른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실은 7층까지 보았는데 서울사람을 오히려 속였다고 이래봬도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으스대더라는 것이다.

이러한 서울이고 보니 올해 일흔 아홉인 변영감은 몇 번 안 되는 서울나들이 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난봄에 가까운 인척의 9순 잔치가 있어 혼자서 서울 조선호텔을 찾아갔다. 여기는 젊었을 적 몇 번 지나친 일이 있어 찾아갈 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 걸 서울시청 앞 전철역에서 내려 땅위로 올라왔는데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땅띔을 못하겠는 것이다. 그만큼 변해 있는 것이다. 두리번두리번하다 한 대학생인 듯해 보이는 젊은이가 있어 물었다. “여기 어디 조선호텔이 있을 텐디 젊은이 알우?” 그러자 젊은인, “가만있어 봐요.” 하더니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할아버지. 요 길 건너서요 오른 쪽으로 가세요 그러면 나올 거예요.” 한다. 아주 친절한 말투에다 손가락으로 방향까지 알려 준다. 그때 마침 옆에 서서 신호등을 기다리던 젊은이가 둘의 대화를 듣고, “조선호텔요? 마침 저 그 앞으로 가는 길이니까요 같이 가세요.” 하는 게 아닌가. 그를 따라가니 바로 모롱이만 돌아가면 되는 곳이었다. 그 젊은이는 호텔 안 연회장까지 데려다주고는 고맙다는 인사도 받기 전에 되돌아갔다.

그런데 오늘은 집안의 당질부가 상을 당해 서울에 있는 병원 장례식장엘 가는 길이다. 전철역에서 무료승차권을 빼려는데 500원짜리 동전이 없어 지폐투입구에 천 원짜리를 넣어도 들어가질 않는다. 잘못 넣었나 하고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머리를 갸웃갸웃 대고 있는데, “할아버지, 제가 해볼 게요.”하는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키가 작달막한 여대생으로 보이는데 몇 번을 시도해도 마찬가지다. 그러자, “할아버지 오백 원짜리 동전 때문에 그러시지요. 제가 드릴 게요.” 하더니 백을 열고 500원짜리 동전 한 개를 쑥 내민다. “아냐, 아냐 하나 더 줘!” 동시에 천 원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그런데, “아녜요, 괜찮어요.” 하더니 휙 돌아서 달아나는 것이다. 하, 참!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이 병원에 올 때 탔던 병원셔틀버스에 타려고 허위허위 뛰어가 닫으려는 버스 문을 두드렸다. 문이 다시 열리고 올라타는데, “할아버지, 인원이 차서 자리가 없는데 이 더위에 다음 차까지 기다리시자면 한참 걸려서 태워드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요 문 앞에 접혀져 있는 비상용자리를 제끼고 앉으셔요.” 이래서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기사의 후의로 편안히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올 수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청주까지 왔다. 그리고 다시 시골집 읍내까지 오는 시내버스로 갈아탔다. 마침 뒤에 한 자리가 비어 있어 앉았다. 그리고 차가 떠나려는데 한 허리 구부정한 노인네가 오른다. 그때 앞에 편 자리에 앉아 있던 등만 보이는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그 노인네를 부축해 그 자리로 모신다. 그때 얼굴모습이 보이는데 한국인이 아니었다. 얼굴이 거무스레한 것이 동남아 젊은이 같았다. 그러면서 그는 한번 씨익 웃어 보인다. 그런데 다음 정차장에서 한 사람이 내리고 또 한 사람이 탔다. 노인네다. 이때 젊은 운전기사가 벌떡 일어나더니 그 노인네를 부축하고 뒤편의 내린 손님의 빈자리까지 와서 앉힌다. 그리고 운전석으로 돌아가면서 그 서 있는 동남아 젊은이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댕큐 베리마치…’ 하는데 그 뒷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아마 ‘자리를 양보해줘서 대단히 고맙다’는 소리 같았다.

참으로 근래에 드문 기특한 젊은이들이다. 이 기특이들이 있어 노인네들이 살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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