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환 충북도 행정팀장

강성환 충북도 행정팀장

필자가 '이장'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하기 시작한 것은 1977년이다. 그때 아버지는 30대 후반에 2년 여간 괴산군 칠성면(당시는 장연면) 태성리 이장을 맡아 동네에 헌신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면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행정기관과 마을주민의 가교역할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부락의 형태로 형성된 리(里)는 지방행정의 말단구역으로, 1949년 지방자치법의 제정으로 법제화 됐다. 이 와 달리 호적관리를 위한 인보단체로 시작돼 일제의 식민통지수단으로, 조국근대화 추진을 위한 주민조직으로 활용된 통(統)은 1975년 내무부의 통·반 설치조례 준칙이 시달되면서 오늘날의 행정구역의 형태로 정착됐다.

리(里)와 통(統)의 대표자이며, 민방위대장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이·통장은 법과 각 조례에서 ‘일선행정의 보조자’로서의 다양한 역할을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들은 지역사회의 리더로서 마을의 불편을 살피고, 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취약계층의 손발이 돼왔다.

그러나 최근 행정여건과 생활여건은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지고 있다. 각종 규제완화, 민원처리 간소화, 통신수단 발달 등 행정여건 변화 따라 행정의 보조 기능은 각종매체(방송,통신,인터넷)가 대신하고 이 정보는 주민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민원제기도 전화한통, 클릭 몇 번이면 가능해졌다.

생업활동과 주거생활이 한 지역에서 이루어졌던 과거 전통부락과 달리, 지금의 주거지역은 교통수단의 발달로 직장과 같이 있을 필요가 적어졌고, 아파트의 증가는 더 많은 이웃을 만들었지만, 핵가족화, 맞벌이, 개인주의 등으로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옛날 말이 될 정도로 이웃과 마을일에 무관심하게 됐다.

전통마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농촌지역의 경우, 인구는 하루가 다르게 감소하고, 남아있는 주민들의 연령은 고령화 되고 있으며, ‘귀농(歸農)’으로 생겨난 새로운 주민은 토착민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렇게, 시대가 변해가면서 이·통장의 역할도 줄어들고 사라지는 것일까. 오히려 변화하는 시대가 요구하는 더욱 중요한 역할이 필요 할 것으로 보인다. 복지사각지대 상시 발굴체계 구축을 위한 복지 이·통장 제도가 대표적이다.

사회 서비스는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최근 송파 세모녀 사망사건이나, 청주 만득이 사건과 같이 복지사각지대 문제도 끊이지 않고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이웃이 이웃을 돕는 체계’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다양한 매체가 행정의 보조자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만, 소외된 누군가는 직접 찾아가서 알릴 필요가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맞춤형서비스 제공을 위한 안내자가 돼야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역할은, 주민자치의 구심체 역할이다. 1995년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장 선거 실시된 이래, 본격적인 지방자치시대는 20여년이 흘렀다. 지방자치의 시작은 ‘주민의 참여’이고, 기존 행정의 전달자 역할을 탈피하여 지역사회 커뮤니티 발전의 주도자로서 여론을 형성하고, 주민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이 바로 이·통장에게 주어진 중요한 역할임을 기억해야 한다.

일부 지역에서 나타난 이·통장의 권력화나 각종 보조사업 비리 연루, 도심지역 통반장의 유명무실화 등으로 얼룩진 이·통장 제도가 이제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덕목과 자질을 갖춘 민주적인 CEO로서, 지역의 그늘진 곳을 살피는 참 봉사자로서 지역의 리더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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