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수그러들 줄 모르는 폭염만큼이나 ‘최저임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논란의 중심축은 최저임금 인상요구가 아니라 인상저지를 위한 대정부투쟁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성균관대 구정우 사회학과 교수는 “집회시위가 올 7월 들어 폭증한데는 최저임금 문제로 인해 우리사회 갈등이 격화된 것을 우선 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노동계뿐만 아니라 경영계와 소상공인들까지 ‘모든 경제주체들’이 생존권방어를 위해 선제적 공격을 벌이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최저임금법’을 보자. 제1조, 목적에는 “이 법은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 제정 취지로 보나 문맥으로 보나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알고 보면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게 ‘최저임금법’이다. 1894년 뉴질랜드에서 세계최초로 '산업조정 중재법'이란 이름으로 실시된 이래, 현재 120여 나라에서 최저임금법을 시행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해 사용자에게 그 이상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제도’가 필요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986년 12월20일, 법률 제3927호로 제정, 30년이 넘었다.

그런데 ‘최저임금’, 왜, 무엇이 문제인가.

뉴스나 SNS상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갈등의 요지는 빤하다.

‘아직도 부족하다’는 측과 ‘아직 감당할 준비가 안됐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국책연구원(KDI)도 최저임금제도 적용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2020년에 8만 명의 고용인구가 줄고, ‘2020년까지 시급 1만원‘을 고집할 경우 연간 14만 명의 일자리 날아갈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법이 아무리 합목적성(合目的性)을 지니고 있다 해도 ‘모든 당사자들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는 실정이라면 현실적으로 사용불가의 ‘무용지물’이요, 다시 손봐야 하는 시제품에 다름없다.

문제를 해석하는 시각차도 크다.

정부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한 ‘2018 경제정책방향’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첫 주자가 ‘일자리·소득주도 성장’인데 현실경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애매모호한 정책 탓에 혼란이 가중됐다는 주장이다. 야구에서 첫 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갔어도 후속타가 이어지지 않으면 점수를 기대하기 어렵다. 홈런이라는 기대치가 있지만 선거 때나 잠깐 선보이고 마는 기술이다.

-죽어라고 일해 봤자 기본생활비에도 못 미치는데 무슨 소비가 일어나겠는가.

-종업원 임금주기도 빠듯한데 내보내든가 문을 닫든가 해야지 별수가 없다.

-시급 7,530원도 못줄 정도면 경쟁력 탓을 해야지, 언제까지 저 임금에만 매달리는가.

-아서라, 아서. 같은 ‘을’끼리 막말 해봐야 돌아오는 건 상처뿐이지.

문제의 핵심은 OECD국가 중에서도 중소기업, 자영업자 비중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의 경제구조에 있다. 근본적으로 ‘최저임금인상’과 별 상관없는 재벌기업, 프랜차이즈 본사, 대기업 위주의 불공정 경제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문제를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혹시라도 문재인 정부 2년차의 ‘지지율’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최악의 선택이다. ‘최고지지율’의 함정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전 정권의 실정으로부터 얻은 반사이익의 반납은 빠를수록 좋다. 대선공약에서도 자유로워져야 한다. 이제는 체감할 수 있는 경제성장의 새로운 모멘텀을 제시할 때다. 지나친 저임금이 문제가 되어 만든 법이, 3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숙주를 공격하는 암적인 존재가 돼서는 안 된다. 소염제만 발라도 낫는 상처가 있고 대수술을 해야 만하는 중병도 있다. ‘최저임금의 반격’에서 벗어나려면 정확한 진단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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