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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숨겨진 이야기2. 괴산의 구곡
우리동네 숨겨진 이야기2. 괴산의 구곡
  • 동양일보
  • 승인 2018.08.09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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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노닐던 구곡, 세월도 풍경도 사람의 마음도 한유롭다.

선유동

(동양일보) 항상 그랬다. 꽃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피고 지는데 그 꽃을 쳐다보는 사람을 향해서 피어있다. 숲속의 성긴 나무들 사이의 꽃들도 언제나 나를 향해 고개를 쳐들고 맑은 미소로 반겼다. 그날도 그랬다. 소나무 숲 가득한 동산에 오르자마자 숨죽이고 있던 진달래가 일제히 나를 향해 기립박수를 쳤다. 화들짝 놀라 멈칫거렸다. 그새를 못 참아 꽃들은 내게 연분홍 물감을 흩뿌렸다. 나는 그곳에서 알 수 없는 황홀감에 온 몸이 감전되었다. 생애 첫 숲속에서의 오르가즘이었다.

선유동
선유동

 

여름의 숲으로 들어가면 이름 모를 풀꽃들이 무성하다. 계곡에도, 능선에도, 논길과 밭길에도, 바위틈에도 이름 모를 꽃들이 오종종 예쁘다. 근본 없는 사내가 길을 가다가 땅바닥에 시선을 주면 그때서야 꽃들이 인사를 한다. 산밭에 난 도라지꽃은 별처럼 피어난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꽃봉오리들이 퐁퐁퐁 꽈리 터지듯이 굳게 다물었던 옥문을 하나씩 열기 시작한다. 꽃은 식물의 성기라고 했던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다가, 그리움에 사무치다가 사람들이 다가올 때 소중한 옥문을 연다.

선유동
선유동

 

괴산은 산과 계곡과 바위와 언덕위의 밭이 지천이다. 그 곳에서 푸른 정기가, 쏟아지는 음이온이, 꽃들의 합창이 끝이지 않는다. 선비와 신선이 자연속에서 밀월여행을 하는 구곡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화양구곡, 쌍곡구곡, 선유구곡, 갈은구곡, 고산구곡…. 오늘은 선유동과 갈은구곡, 고산구곡을 건들마처럼 어슬렁거려야겠다.

선유동
선유동

 

선유(仙遊)구곡은 신선조차 그 아름다움에 매료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노닐던 곳이다. 퇴계 이황이 송면 일원의 비경에 취해 아홉 달 가량 머물며 구곡의 이름을 지어 바위에 새겼다. 화양구곡이 남성미 넘치는 곳이라면 여기는 여성의 단아함과 아름다움이 끼쳐온다. 선유동의 시작은 선유동문이다. 수 백 개의 바위가 층층이 쌓여 있다. 그 사이로 계곡물이 흐른다. 수백 척에 달하는 절벽 사이로 푸른 소나무가 하늘가 맞닿아 있다. 바위와 소나무와 하늘이 하나되어 노래하니 이곳은 경천벽이다.

갈은구곡
갈은구곡

 

푸른 학이 둥지를 틀었다는 학소암에서 비루한 마음 부려놓고 연단로(練丹爐)로 발길을 옮긴다. 억겁의 풍상을 품은 먹바위가 장대하다. 그 가운데는 절구처럼 패여 있다. 신선들이 이곳에서 금단을 만들어 먹고 장수했다고 한다. 여름에는 와룡폭포에 몸을 맡기는 게 좋겠다. 용이 물을 내뿜는 듯이 쏟아내는 물소리와 새벽의 물안개가 좋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다고 했던가. 나무꾼이 바위 위에서 신선들의 바둑 두는 모습을 구경하다 세월이 흘러 도끼자루 썩었다는 곳이 난가대다. 바위가 평평한 바둑판 모양을 하고 있다는 기국암, 큰 거북이가 머리를 들어 숨을 쉬는 것 같다는 구암, 퉁소를 불며 하늘의 달을 희롱하던 신선이 머물렀다는 은선암도 있다. 신선이 풍류를 즐기는 동안 보름달은 얼마나 많은 별들을 잉태했을까. 오늘 밤, 수많은 별들이 쏟아질 것 같다.

갈은구곡
갈은구곡

 

칠성면 갈론마을 계곡에 위치한 갈은구곡도 신선의 낙원이다. 마당처럼 그고 집처럼 높은 장암석실을 시작으로 갈천정, 강선대, 옥류병, 금병, 구암, 고송유수재, 칠학동천, 선국암이 이어져 있다. 신선이 바둑을 두고 일곱 마리 학이 동쪽으로 날아갔다. 그곳에 늙은 소나무가 빼곡하다. 거북 모양의 바위, 시루떡처럼 생긴 암석, 비단 병풍처럼 둘러싼 바위 등 이곳은 이야기의 숲이다.

괴산읍에서 감물면 방면에 자리잡은 구산구곡도 명승지다. 만송정, 황니판, 관어대, 은병암, 제월대, 창벽, 영객령, 영화담, 고산정이 있는데 숲과 계곡과 들길과 역사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올 여름은 유난히도 습하고 뜨겁고 질기다. 나뭇잎들이 기진해서 늘어졌다. 그럼에도 흰 구름과 햇살은 무량하고 자연은 말이 없다. 사람의 마음만 정처 없다. 일도 중요하지만 노는 것도 전략이다. 오늘 하루 마음 부려놓고 신선놀음 어떨까.



글 변광섭 <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사진 송봉화 <사진작가, 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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