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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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망스럽게도 폭염이 가장 심한 시기에 시원한 나라 캐나다로 휴가를 다녀왔다. 이민을 떠난지 43년이 된 친구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태어난 곳보다 그곳 생활이 더 오래된 친구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문화와 입맛을 지키며 살고 있었다. 예쁜 정원에 나무상자를 놓고, 그곳에 상추와 고추, 아욱, 호박, 쑥까지 기르면서 그것들로 반찬을 만들었다. 특히 배추김치, 열무김치, 오이소박이, 깍두기는 물론, 갖은 나물과 팥고물 쑥떡, 감주까지 내놓을 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긴 세월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는 것은 어쩌면 변하지 않은 입맛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친구 덕에 그 나라 이곳저곳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바다와 하늘빛을 구별하기 어려운 씨엔드스카이(see and sky)라는 하이웨이도 달려보고, 눈만 들면 나무와 호수인 록키마운틴과 알래스카 빙하까지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방문에서 가장 느낌을 크게 받은 것은 친구가 살고 있는 도심의 주변환경이었다. 바다로 흘러드는 강하구의 산책길은 시멘트나 인공의 손길이 보이지 않는 편안한 흙길이었으며, 길 아래쪽으론 커다란 늪을 그대로 살려두고 있어서 새들과 풀들의 낙원이었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나 가로수들은 정리되지 않은 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마음껏 자라고 있었고, 공원의 나무들도 일체 사람이 가지치기를 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친구는 말했다.

이곳 사람들은 자연은 자연의 힘으로 생명이 유지될 수 있도록 인위적인 손길을 최소화한다고. 그래서 쓰러진 나무는 그대로 썩도록 방치해 흙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숲에 갈 때는 어떠한 것도 가져가지 않으며, 단지 숲이 선사하는 선물들-산소와 피톤치드 음이온-을 고맙게 얻을 뿐이라고.

폭염을 피해서 갔건만, 돌아온 뒤에도 한국은 여전히 폭염이었다. 낮 최고기온 33도가 넘는 날이 2일 이상 지속될 때 폭염주의보가 발령되는데, 그동안 33도 이하로 내려간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심지어 40도까지 올랐었다고 오죽하면 코프리카(코리아+아프리카), 서프리카(서울+아프리카)라는 말이 나왔을까. 올여름 최고의 폭염도시는 단연 서울, 그 뒤를 이어 대전과 청주가 2,3위란다. 서울은 빌딩숲으로 그럴 수 있다고 보지만, 가장 덥다던 대구를 제치고 대전과 청주가 더 더운 것은 무슨 이유일까.

대구는 나무심기와 물뿌리기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지난 20여 년간 3400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어 이들 나무들이 자연적인 그늘막을 만들고 무더운 공기도 식혀준다. 또 자동물뿌리기 장치로 도로에 물을 뿌려서 한낮 도로 표면 온도를 낮춘다.

청주는 어떠한가. 공원을 보자. 나무들은 과잉 가지치기로 제대로 키가 큰 나무들이 없다. 공원 바닥은 보도블록을 깔아서 흙을 밟을 수 없다. 나무들이 키가 크지 않으니 그늘도 적다. 가로수는 말해 무엇하랴. 전깃줄에 걸린다고,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고, 낙엽이 떨어진다고, 몸통만 남겨두고 가지치기를 해서 겨우 나무로서의 생명만 유지할 뿐이다.

저 생긴대로 맘껏 하늘높이 자라는 캐나다 나무들에 비해, 가지가 잘리고 다듬어지는 청주의 나무들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러니 그늘인들 제대로 만들고, 더운 열기를 식혀줄 수 있겠는가.

나무가 많은 공원은 휴식공간으로, 도시의 열을 내리고, 산소를 만들고, 미세먼지를 줄여주며, 빌딩숲을 벗어나 숨통을 틔워주는 존재다. 그러기위해선 나무를 다시 보자.

청주시의 공무원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공원의 나무들이 나무답게 자랄 수 있도록 과잉조경을 피하고, 나무들이 지닌 생존의 힘을 지켜보며 단지 옆에서 도와 달라. 그것이 장기적으로 폭염을 줄이는 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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